[288번째책] 골든아워1-이국종

골든아워-이국종

책속의 한구절

나는 중증외상센터 설립 과정에서 실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했다. 그 과정은 매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만큼 지옥 같았다. 시스템은 부재했고, 근거없는 소문은 끝없이 떠돌았으며, 부조리와 불합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돈 냄세를 좇는 그림자들만이 선명했다. 그 속에서 우리 팀원들은 힘겹게 버텨왔다.

  • 이국종 교수가 겪은 고통은 사회가 한 개인에게 저지른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자신에게 휘몰아쳐 올 때 그 압박감과 좌절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월호 참사,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 다른 사람의 일이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사회로부터 겪는 고통이 한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 혹은 내 지인들에게도 칼날이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배운 것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발산이 아닌 응축이라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배운 점이다.

  • 배려의 반대말은 폭력이다. 즉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 언론, 대중, 권력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조직과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이뤄지는 공공연한 폭력을 그냥 좌시해서는 안된다.

  • 사회적 폭력을 조장하는 문화와 분위기에 동조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원칙주의자 문재인 모델삼아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터진 장기를 꿰매어 다시 붙여놓아도 내가 생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수술 후에 파열 부위가 아물어가는 것은 수술적 영역을 벗어난 이야기이고, 나는 환자의 몸이 스스로 작동해 치유되는 과정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 지난한 기다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종 인공생명유지장치들을 총동원해 환자에게 쏟아붓는 것뿐이고, 그것은 치료를 ‘돕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직접 환자를 온전히 살려낸다거나 살려냈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외과 의사로 살아가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외과 의사로서 나의 한계를 명백히 느꼈다.

  •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몸에 칼이 그어지면 웬만한 병은 다 낫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약먹고, 잠자고, 몸 잘 살피면 누구나 건강해 지는줄 알았다. 생명은 의사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줄 알았다. 허나 이 책을 읽고 생명은 사람의 어떤 의학 지식으로도 보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 인간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존재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죽음이라는 한계를 둔 이유가 뭘까? 신에게는 죽음이란 개념이 없었을 텐데 죽음을 어떻게 창조하였을까? 인간이 오만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 의사 이국종은 겸손한 사람이다. 자신의 힘과 에너지로 죽어간 사람을 살아가게 끔 기적같은 일들을 해내지만 생명은 하늘에 뜻에 달려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 자신의 분야에서 우물안 개구리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실로 대단하고 능력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물이 얼마나 좁은지도 모른채.

  • 겸손해지자. 타인들 앞에서 아는 척을 습관처럼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충분히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해 커진 자격지심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외상외과와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서 두 사람의 말은 종종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었다. 김재근의 조언은 귀 기울일 만한 것이었고, 이기명이 제시하는 방향은 명쾌했다. 이기명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답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 방향이다. 어쩌면 해답을 한 번에 구하려는 것은 우매한 노력일 것이다. 그 노력이 좌절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이기명의 태도는 내게 늘 신선한 충격이었다.

  • 속도보다는 방향.. 많이 듣기는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다. 과연 내가 향하는 방향이 올바를까? 에 대한 고민을 죽을때까지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친척하고 이 방향이 맞다고 앞만보고 달려간다면 되려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 일상의 작은 문제를 대하면서도 인내하지 못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순간의 분노, 죄책감,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결정한 선택은 뒤늦게 돌아보았을 때 항상 후회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답이 없는 인생의 숙제 이기에 너무나 힘겹고 끝없는 고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답을 외면한체 문제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변을 멤돌며 살아간다. 답을 찾지 못한채…

  • 저자가 본문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해답을 한 번에 구하려는 것은 우매한 노력일 것이다. 산을 오르기 보다는 사막을 건너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필요가 있다. 성급해 하지도 말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쉼과 전진을 반복하며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 인생은 누가 가장 높이 뛰어 올랐는가 보다는 누가 마지막 까지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달리고 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행복하고 아름다울 인생의 황금기인 노년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자.


수많은 논의와 회의에서 말잔치를 벌일 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실제 사고 현장으로 출동해 환자를 헬리콥터에 실어 올려 응급 처치하고, 병원으로 데려와 수술해 환자를 살리는 이들은 그 같은 회의 자리에 없었다. 회의석상에서 쏟아지는 말의 주인들은 중증외상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고, 사고 현장을 머리로 아는 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일하다 온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말들에 대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욕을 먹어도 1년만 버티며 확실한 성과를 보여줄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선진국에서도 새로운 시스템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 만약 내가 이국종 교수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면 그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였을까?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에 휩쓸려 똑같이 침을 뱉고 손가락질 하였을 것이다. 단 한마디의 대화도, 눈인사도 없이 2000년 전 예수를 못박으라며 소리치던 성난 군중들의 한명처럼 되어 매몰차게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을 것이다.

  • 상대를 이해하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려면, 대화를 해야한다. 내가 한발짝 다가서므로 느끼게 되는 상대의 거절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이해하면 아끼게 되고 아끼면 사랑하게 된다. 그러기에 진정어린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부터 실천하자. 속이 비어있는 껍질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대화로 내가 해야할 직장내의 사회적 의무를 다했다 자족하지 말자. 시간과 에너지라는 의도적 노력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결국은 나를 포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내게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라서 더 힘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심각함이 지나쳤다. 기존의 체계와 인사, 재정, 지원과 운영 모든 면에서 부딪혔다.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이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비아냥과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고 내가 등을 돌리는 순간 숨기고 있던 칼을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그 저열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이제는 나 하나로 끝나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덩달아 힘겨워졌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 쉽게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말로 상대를 향한 믿음 을 내보이며 신뢰를 주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속은 꿍꿍이로 가득찬 사기꾼이다.

  • 그런 의미에서 내일 당장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내 뒤통수를 친다더라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이 뒤에서 내 등에 칼을 꽂더라도 그래 너도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말 것 같다.

  • 어찌보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한 자기방어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변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이 좋다. 멀리가려면 함께가라고 하지만, 난 아직 멀리 갈 생각이 없다. 만인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허 위원은 조용히 나를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모든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그러니까 외상센터고 외상외과고 뭐건 간에요. 최근에 벌어진 이런 어려움을 겪고 통과해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많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정말 외상센터 선정이고 뭐고 다 떠나서요. 그저 지나 보내는 것만으로도 말입니다.

  • 냉혹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알지만 이국종 교수가 부담을 갖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그를 돕는 멋진 사람이다. 자신이 직접 사지로 걸어들어가보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고통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신이 이국종 교수에게 함께하는 사람들을 선물로 주었다면 허 위원도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 어려움을 겪고 통과해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말을 사지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 인생을 살아오며 아직까지 삶이 힘들다고 느낄만큼 큰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가올 그 파도의 무게가 얼마나 강할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파도가 밀려올 때 이국종 교수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긴하다.


이세형은 화려하게 비상하던 국적기 항공사의 기장으로 옮겨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로를 틀어 이제 막 창설된 경기 소방항공대의 창단 멤버로 헬리콥터 파일럿이 되어 환자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길을 포기하고 위험하고 힘든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웃었다. ― 이 일이 훨씬 보람 있습니다. 요즘 신형 고정익 기체들은 거의 GPS만 찍고 자동항법장치로 운행해요. 저는 그래도 한 번씩 비행할 때마다 사람 목숨을 구하지 않습니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통해 이목을 집중받는 것을 즐긴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부러음과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시선들은 빠져 나올 수 없는 마약과 같이 달콤할 것이다.

  • 하지만 이 달콤함의 끝이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내면에 깊은 소리에 주목한다.

  •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 사람들의 눈은 깊고 맑다. 삶의 선택의 방향이 선명하다.


― 밥 벌어먹고 살게 되었으면 돈 욕심은 더 내지 마라. 어머니는 의사가 된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밥이라고 해서 다 같은 밥은 아닐 것이므로, 어리석은 나는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과 욕심내어 더 벌어먹으려는 것의 경계를 알기 어려웠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 얼마만큼이면 충분합니까? ― 시장기를 스스로 없앨 정도면 된다. 어머니의 답은 어머니처럼 곧았다. 살아오면서 나는 있어야 할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분수에 넘치는 끼니를 원한 적이 없다. 빈 그릇에 채워지는 것을 채워지는 대로 먹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밥을 벌어먹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어쩌면 나의 허기는 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끼니를 채워도 가시지 않는지도 몰랐다.

  • 우리 어머니도 이국종 교수의 어미니와 비슷한 인생관을 가지셨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 적을 만들지 말아라. 딱 두가지만 항상 말씀하셨다. 어찌보면, 욕심을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에게 가장 행복한 모습이지 않을까?

  •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남들보다 뒤지지 않도록,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많은 자본을 에너지를 투자한다. 어떤 부모든 자신과 자녀가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경쟁을 이기기 위한 싸움터에 자녀들을 등 떠미는 것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가져오곤 한다.

  •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업으로 삼고, 삶의 소소한 행복들을 이곳저곳에 배치해두고 산다면 더할나위없이 성공한 인생이 될 것이다.

  • 7,80년대 성공신화에 물들어 버린 우리의 50,60대 꼰대들은 지금도 후세대에게 자본주의적 성공과 출세를 잣대로 들이밀며 보이지 않는 폭력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참으로 비루하고 미천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불쌍하다. 우리의 자본주의 꼰대들은 자신의 삶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외면한체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상상속의 신기루를 쫓아 자신과 남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긴다.

  • 꼰대가 되지 말자. 욕심을 내기 보다는 자족하는 행복을 누릴 줄 아는 호모 사피엔스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