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번째책]골든아워2 이국종

골든아워2-이국종

책속의 한구절

우리나라 의료는 대부분 민간 의료에 기대고 있고 국가는 일부 국립대학의 의사들을 길러낼 뿐이다. 국내 의사들이 숙달된 전문의로 성장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노력의 결과다. 소명이나 사명은 꿈같은 말일 뿐 ‘자발적 희생’에 지나지 않고, 국가든 누구든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의료 공백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 어떤 직업이건 꾸준한 자기개발은 선택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다만, 그 선택이 가져오는 후폭풍에 대한 감당은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바보 같은 선택을 그들은 사명감 이라 명명한다.

  • 주위를 둘러보면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대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곤한다. 그들은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도 종교를 갖는다는것, 사명감을 갖는다는 것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삶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지 않고 종교생활만을 쫓아 사는 것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생의 완성은 사명감의 유무에 따라 실현되기도 사그라들기도 한다.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사명도 찾지 못했고, 당연하게 그 어떤 일에도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에 와닿는 대의명분이 없었다.

  • 언젠가는 목숨을 걸어볼 만한 ‘사명감’ 을 쏟아낼 일이 내게도 찾아올까? 세상의 모든 인류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꾸준하게 내 삶을 채워가는 일상을 준비모드로 살아가자. 읽고, 느끼고, 고민하며 씨름해보자. 미래에 필요한 사람은 깊은 사고와 통찰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계에게 자리를 위협받는 숙련노동자는 더 이상 한국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적절한 선에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중도에 포기하는 용기가 없었고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는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같고, 잘못 건드리면 바스러질 얇은 유리잔과 같았다. 거부당하는 결재 사안들 하나하나가 모두 센터 운영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한국 사회에 걸맞은 인사가 되지 못했다.

  •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다. 사회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저 내가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산다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내가 쓰레기를 줍고,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하며, 나를 포기하는 선의가 퍼져 사회는 바뀐다. 고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 양보와 배려, 이 두가지만 일상에서 충실하게 채워나간다면 한국사회는 바뀔 수 밖에 없다. 일상과 업은 분리되지 않으며, 한 흐름속에 흐르기 때문이다. 일상이 팍팍하고, 남을 배려조차 할 수 없는 각박함이 가득하기에 사회마져 그 흐름속에 흘러가는 것이다.

  • 사소한 배려로 일상의 소소한 나눔을 실천하며 살자. 순간순간 되세기자, 한순간의 다짐으로는 습관화 할 수 없다.


소방의 많은 중간관리자들은 의료진의 헬리콥터 출동을 폄하하면서도, 추후 책임질 만한 결정적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신묘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그런 재주가 있어야만 치열한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을 나는 무수히 들어왔다. 아주대학교병원도 마찬가지였고 소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들은 내가 먼저 지쳐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 나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나쁜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원칙으로 내 주변사람들이 다친다면 심각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게 된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원칙을 지키위해 수많은 생명들이 고통받는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고민이 반복되게 된다.

  • 다만, 제도와 시스템의 정비로 주변의사람들이 다치지 않고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이라는 희망으로 저자는 중증외상센터의 항공출동을 꾸준히 지켜왔다. 그 생각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길 바라지만, 한국사회는 아직 그의 생각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 한국의 사회는 다수의 희생을 통해 소수를 살리는 경험이 낯설고 어렵다.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며 내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아직 그릇이 커지지 않았다.

  • 만약 나의 생활에 다른 생명을 위해 내 불편이 발생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당장 내일부터 우리 집 앞에 환자수송을 위한 헬기가 이착륙을 반복하고, 아침아고 새벽이고 저녁이고 없이 소음으로 수면을 방해받고 가족들이 힘들어 한다면? 나도 장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한번이라도 현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면 어느정도 감당해 볼 만한 불편함이 되지 않을까?

  • 사소한 불평의 90%는 ‘모름’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다. 수많은 고민과 계산을 통해 최종적 결정을 이끌어온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찌보면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에 대한 문제보다 관계 의 문제가 더 크다.

  • 부끄럽지만 나는 관계 보다는 우선주의이다. 이 완성되어 관계 를 돌아볼 여유가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 크다. 일이 되지 않는데 관계만을 다져간다면, 조직의 목표보다는 정치 에 집중하는 꼴이 되고 만다.

  • 조직의 핵심은 의지 를 갖고 일의 의미 를 본질적으로 깨닫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포진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천번, 만번 맞는말이다.


김태영 전 장관은 실제 전투에 투입할 장교들은 줄어드는데 관료화된 참모 조직만 비대해지는 군대는 썩은 군대라고 지적했었다. 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 공감한다. 회사도 동일하다. 실전에서 문제에 부딪혀가며 해결법을 찾아 시행해 나가는 실무자가 눌어나지 않고 관료화 된다면 회사는 희망이 없다. 철밥그릇 을 축내는 애완견에 지나지 않다. 그저 자신이 불리하지 않을 만큼의 정치 에만 신경쓰고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조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지옥에선 난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 내가 소속된 조직에도 이런 관료화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나는 미련없이 조직을 떠날것이다. 조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고,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사회는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간은 모르는 채 사는 것이 좋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일부 ‘선수’들만이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 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할 뿐이다. 나는 이 사회 안에서 평범하게 자영업자로서의 의사직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제넘게 시스템에 접근한 탓에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간을 알아갈수록 무력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 시스템을 이용하는 ‘선수’들은 대중이 쉽게 흥분하길 바란다. 흥분이 습관화 되면 흥분이 가라 앉는 것도 습관화된다. 언론을 이용하여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사그라드는 대중을 길들여 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신뢰하거나 자주 접해서는 안될 이유이기도 하다.

  • 주류에 휩쓸리지 말자. 본질을 파악해내는 눈을 길러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제 그릇에 따라 견디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견디느냐 견디지 못하느냐는 제 역량에 달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포개놓은 그릇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 그릇의 크기에 비춰볼 때 너무 많이 와버렸다.

  • 견디기. 최근 ‘버티는 삶에 관하여’의 저자 허지웅이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SNS를 통해 투병 사실을 알리고, 열심히 치료받고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견디는 것이다. 전쟁의 승자는 순간의 승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승리한 것이다.

  •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종착점이리라

  • 사회의 면면을 세밀히 살피고 구조를 이해하며, 사회현상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혜안을 길러가는 연습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필요한 지식인으로서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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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5 Words

2018-12-16 08:54 +0900

150ad0b @ 201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