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번째책] 나는죽을때까지재미있게살고싶다 이근후

나는죽을때까지재미있게살고싶다

책속의 한구절

누구나 즐겁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순간순간이 쌓여 진짜 재미있는 삶을 만든다.

  • 직작생활을 5년정도 하다보니 일상에서 무언가에 재미를 느끼고 열중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무료함을 간신히 달리며 살고 있다고 할까?

  •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일상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재미를 만드는 시작점이리라.

  • 갑작스레 일상이 재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상황이지만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 당장 내일부터 사소하게 지나쳐왔던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해보자. 사소해 보일지라도 조바심 내지말고 관찰해보자.


누구라도 인생의 수많은 고비를 넘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어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일들을 겪으며 산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나는 ‘내 인생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매사에 후회가 적고 만족할 수 있었다. 내 행복의 비결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덤이라는 생각. 아무렇지 않게 호흡하는 한 숨이 덤이라는 생각. 죽음의 위기를 겪지 않고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다.

  • 사이클을 하다 오른쪽 눈 아래쪽 피부에 쓰고있던 안경알이 박히는 낙차 사고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아 내가 사고가 났나보다. 다행히 눈을 안다쳤네 하고 어쩔수 없다는 생각으로 치료받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사고가 있고나서 몇해가 지나고 나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으로만 만져지는 흉터를 가끔씩 만져보며, 덤으로 얻은 오른쪽 눈이라는 생각에 감사해지곤 한다.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고독사孤獨死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 노인이 된 내가 찾아가더라도 하루하루를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나를 반겨줄까? 내가 만약 젊은 시절 사회저명한 인사이거나,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던 사람 정도는 되야 체면치레를 하지 않알까?

  • 노년의 고독을 책과 함께, 사색과 함께, 글쓰기와 함께 보내면 되지 않을까? 조금은 부족한 외로움은 반려동물을 통해 충족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겉으로 드러내 풀고자 한다. 어른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한 채 오로지 나 좀 봐 달라고 하소연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는 등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들을 향해 우리는 ‘애처럼 군다’고 말한다. 

  • 나도 노인이 되면, 내 욕구와 욕망을 하소연과 불평과 화를 내는 감정으로 쏟아낼 것이다. 남을 보며 혹은 주변의 어른들을 보며 나잇값을 못한다고 손가락질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손가락질을 당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누구도 나는 아닐꺼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 풍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아가 강하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기 싫어한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도 간섭이라 여긴다. 왜 간섭 받기가 싫을까. 바로 커뮤니케이션 스킬,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은 인터넷이나 책에서 배울 수 없다. 오직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몸에 배는 것이다.

  • 나야말로 전형적으로 자아가 강한 타입이다. 간섭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어떤 무리에도 끼고싶지 않다. 스스로 가지는 여유로움과 시간들을 만끽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을 타인에 의해 침범을 당하고 싶지 않다.

  •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꼭 유익한 면만을 가지고 있을까? 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 타인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 아니라 타인이 누구냐이다. 서로가 유익이 되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려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인생에서 시간은 무한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소통에 앞서 또 한가지 중요한것은 일상에서의 사색이다. 사색이 없는 사람과의 대화는 참으로 빈곤하기 그지없다. 서로를 견제하고 호구조사 성격의 대화만 늘어질 뿐 어떤 공감도 유익도 얻을 수 없는 빈곤한 대화로 채워진다.

  • 사람들은 대화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계산한다. 상대의 고통의 크기 나의 고통의 크기, 상대의 쾌락의 크기 나의 쾌락의 크기. 그 어느것 하나에서도 지지않기 위해 상대의 크기를 이기기 위한 말들을 쉼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전투를 마치고 서로를 충분히 공격하고 패잔병처럼 떠난다. 승자는 없다. 이 승자 없는 대화를 위해 에너지를 쏟는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 말로 인한 상대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입을 열기보다 귀를 더 열어야 한다. 그래서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한 경쟁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도구로 발전시켜야 한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내 뜻은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한다.

  • 현명한 거절은 마음의 보약이다. 예스맨들의 특징은 어설프게 착하다는 것이다. 상대의 별 의미없는 요청에도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단 수락하고 본다. 서로가 더욱 불편한 상황들을 만들어 낸다.

  •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족한게 아니라 미련한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들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개선하려 하지 않기에 미련한 것이다.

  • 내 뜻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생각한답시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가 되려 모두가 감정이 상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 소신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만 고의로 부탁을 하는 영악한 사람도 있다. 사람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은 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모두 계산하고 접근한다. 상대가 다른 수를 둘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하여 상대를 이용해 자신의 편리를 취한다.

  • 사람을 이용해먹는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전하며 거절할 줄 아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설프게 착한 척 하지 말자.


나는 ‘최선’이라는 말이 싫다. 최선은 내가 가진 100을 다 쓰라는 말이다. 그러면 씨앗을 먹어 치운 농부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차선이라고 해서 적당히 하다가 내키는 대로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완벽에 매달리기보다 잘하는 정도에서 즐기고 만족한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자고 하면 1등, 최고를 추구하게 되고 그것은 경쟁을 부추길 뿐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 최선이야말로 경쟁을 부추기는 기폭제이다. 최선의 노력이라는 의지안에는 경쟁이라는 독이 묻은 가시가 박혀있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말은 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는 말과 다를바 없다.

  • 차선으로 살자. 공감한다. 김정운 연구소장이 떠오른다. 차선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경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며 경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는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지 내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거추장스런 대의명분 붙여가며 세상을 위해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치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행복해진다. 내 가족이 먼저 평화로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행복해진다. 한국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대한민국 국기를 들고 시위에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 치고 가족이 온전하거나 평화로운 사람은 많이 못 본듯 하다. 집안이 전쟁이니 국가라도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것일까?

  • 나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에너지를 아껴 쓸 줄 알아야 한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경쟁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사람들은 가정을 위해선 어떤 에너지도 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목적지를 모르는 기관사가 운행하는 전철에 탑승하는 승객들과 같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게 하고, 삶을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첫 번째로 하고 싶은 당부는 바로 이것이다. 인생을 안다고 자만하지 마라.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겸손함, 이 한 가지 미덕으로도 삶은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 겸손치 못한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 타인을 한순간의 판단으로 규정짓는 내 습관이 바뀌어야 한다… 말로는 할 수 있는데. 실천하기가 실로 어렵다.

아직 의대생이거나 병원에서 한창 활동 중인 젊은 의사들이 나를 찾아오면 꼭 당부하는 것이 있다. 일에만 모든 것을 걸지 마라, 올인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일에 목숨걸지 말아라. 일에 목숨걸면 정말 죽는다. 라는 명언이 있다. 맞는 말이다.

  • 일은 삶의 균형을 가져가는 한 영역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일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적인 본질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일을 해결해 내는 것보다도 불안한 정서를 안정시키는것이 우선이다.

  • 주변사람들은 일중독에 빠진사람이 불안해 보인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본인만 모른다. 몸에 이상이 와도 쉬쉬하며 쉬면 괜찮아 질것이라며 대충 넘어가곤한다.

그랬더니 막내는 자기가 제일 손해라면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달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 수시로 그 말을 했더니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재산은 사회 환원되는 거구나, 내 집을 장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자녀에게 디딜 언덕을 남겨주지 않는 것이 참으로 현명해 보인다. 은퇴한 부모에게 유산을 기대하는 자녀에게는 청천벽력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부모와 독림된 자아로 성장하는 자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지 않을까?

내가 지금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나에게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일까?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괴로울 때는 이런 의문을 던져 보라. 그 질문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 내가 가지지 못해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많다. 돈, 지위, 평가, 등등. 나는 아무래도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나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좋아야만 하는 것일까?

  • 나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좋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그렇지 않다면, 평가에 예민하게 굴필요도 없어지는것 아닌가?

사람들은 좋은 일하며 살아야 하는 건 잘 알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돈을 번 뒤에 기부를 하겠다거나 복권에 당첨되면 뭉칫돈을 내놓겠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봉사를 특별하고 거창하게 뭔가를 확 바꿔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사가 어렵다. 임종이 가까운 이들에게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좋은 일을 많이 할 걸 그랬다는 답이 꽤 있다. ‘나중에, 다음에, 돈 벌면’ 하다가 인생을 다 살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착한 일 좀 해서 천국행 점수를 따려고 해도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어렵고 불편할 뿐이다.

  • 사소하게 여겨질 만큼 작은 시도로 시작하는 봉사가 필요하다. 거창한 계획이나 큰 돈을 들일 생각말고. 올해 마지막날에 아파트 관리실 경비원분들과 과일을 나누어야 겠다.

내 삶은 나에 의해 남겨지지 않는다. 내 삶을 기억하고 추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에 의해 남겨질 것이며, 운이 좋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내일 닥치더라도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발버둥치지 말자. 스스로가 남긴 업적이 아닌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그 사람의 성정이 그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것이다.

한 가지를 완벽하게 해내려면 그 일에 시간과 능력을 전력투구해야 한다. 1등을 하기 위해 바닥까지 짜내다 보면 옆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풍경의 즐거움도, 인생의 다른 가치도 놓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애면글면 경쟁하며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조금 덜어내 여유를 갖고 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인간애, 즐거움, 가족애, 봉사심, 일의 성취감 등 그 가지치기는 무한하다.

우리는 평생 경쟁하면서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왔다. 경쟁 유도는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래서 인생을 마무리할 시기에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비교하고 채우려 든다. 늙어도 경쟁, 죽는 데도 경쟁이다.

나이가 들면 꼭 해야 되는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이 더 많아진다. 혹 안 해도 될 일을 체면이나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보라. 그렇게 살아야 꼭 좋은 인생, 성공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데 소중한 시간을 다 써 버리지 마라. 뭐든 지나치면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지듯, 좋은 욕심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부모는 일정 기간의 양육과 보호가 끝나면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모든 일을 자식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의외로 쉽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물론 자녀의 삶이 불행해지면 부모가 걱정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부모 세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년이 되어 홀로 자신의 생활을 해 나갈 때까지 돌보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이는 부모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형편을 알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다.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더 많이 욕심을 내는 것 또한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내 형편에 천만 원은 없어도 되는 돈이었으니, 나는 분수를 모를 뻔했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 부족해지는 이치다.

노년은 돈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기다.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돈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돈 때문에 눈물 안 흘리려면 젊어서부터 돈에 대한 내공을 쌓아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0억이 생겨도 행복하게 쓸 줄 모르며,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 여기고 더 쉽게 절망에 빠지게 된다. 

돈에 대한 균형감이 진짜 행복을 만들어 준다. 노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지난날의 저축이다. 그런데 돈만 저축할 게 아니라 마음도 저축해야 한다. 돈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다져야 한다. 돈만 저축하면 노후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을 저축하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 불행하다.

젊은이들에게 옛날 가치관을 들이대는 것은 “문경새재로 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현명한 어른이라면 “요새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렸더구나. 나는 안 가 보았지만 너는 그 길로 가 봐라” 하고 말해 주어야 옳다. 또 나이가 들어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것들에 적응해야 한다. 자기 경험과 기억만 옳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해 줄 것은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잘하고 있다는 격려다. 젊은이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깨우치고 자기 삶의 대안을 찾아가야 옳다. 젊은이는 그들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비록 우리와 똑같은 실패를 저지르더라도 결국 그들의 몫일 뿐이다. 그 사실을 젊은이와 나이 든 세대 모두가 인정해야만 한다.

누구의 하루가 더 활기차고 즐거울지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간다. 일상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늘 반복되는 생활, 반복되는 생각이 지겹다. 내 자신이 마뜩찮게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하루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노년은 잔잔한 호수를 떠가는 나룻배다. 나룻배는 동력이 거의 없다. 젊은 날에 소진했기 때문이다. 조금 남아 있는 힘으로 저어야 하는 나룻배는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배의 속도에 맞춰 주위 풍경도 천천히 흘러간다. 평소 보지 못한 많은 것들에 눈길이 닿고, 작은 소리도 가깝게 들려온다. 나무의 푸른 이파리,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의 지저귐, 일렁이는 물결, 그리고 노를 젓는 내 손등에 도드라진 힘줄까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글을 쓰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그러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위가 보인다. 긴 세월 동안 비바람에 닳고 깎인 바위는 영락없는 사람의 옆모습인데 사람들이 나를 닮았다고 했다. 정말 나를 닮았는가 싶어 찬찬히 뜯어본다.

말한다. 인간이 변하기란 정말 어렵다. 죽기 직전 눈을 감을 때까지도 철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남편도 변하지 않고 아내도 변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원망하며 10년, 20년을 보내다가 결국 노년에 이르면 부부는 서로에게 원수가 되어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불만스러운 점은 단지 조금 고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우리는 내가 느낀 것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긋나면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고 오해를 품게 된다. 오해는 미움으로 변하고, 결국 상처를 주고 관계는 나빠진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상대의 감정에 이입해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다. 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배려다. 공감과 배려의 능력은 인생의 경험과 비례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면서 성격이 수동적으로 변한다. 누군가에게 기대려 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욕구에 반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노여움을 타기도 한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이러한 성격적 특징을 알면,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습관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가족 사이에서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하게 말하고 적당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서 한 번의 실수가 완전한 실패를 뜻하지 않듯, 한 번의 성공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공과 실패, 좋은 일과 나쁜 일, 이 모두가 인생을 이루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와 내 삶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다. 잘못한 일, 틀린 생각, 오류, 엉터리 이론……. 이런 오점을 알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자기의 치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는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 일은 증오를 사랑으로 갚는 것, 버려진 자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가에 ‘지금 네가 선 자리를 꽃방석으로 만들라’는 말이 있다. 과거도 미래도 보지 말고, 지금을 보라는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오늘을 살 뿐이다.

수많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한 말이다. 다만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고, 그 가운데에서 나의 행동을 결정지으며 살아갈 뿐이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나의 의지가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따라 내 마음대로 살았다, 못 살았다가 좌우되는 것이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장애물을 만났다. 그리고 그 장애를 넘는 데 안간힘을 썼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내가 가고 싶은 길 앞에 기차 레일을 착착 깔아 주지 않는다. 혹 정해진 기차 레일이 있다면 오히려 나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어서고 이겨낼 때 비로소 진짜 원하는 것을 갖게 된다. 그런 사람만이 ‘내 마음대로 살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긍정’이라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한다. 긍정이 나쁜 것도 무조건 좋게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긍정은 모든 걸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나에게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자세가 있다면 나쁜 일이라도 최악으로 흐르지 않도록 내 마음과 행동을 움직일 수 있다.

일본의 자녀교육 전문가 가나모리 우라코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배짱이 무엇인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데 다른 사람 눈치를 왜 보겠는가. 인생의 성공은 결국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그는 대중에게 쉽게 설파했다. 또 그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통해 보여 주었다. 

나를 사랑하면 주관이 세워진다. 타인과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 인생은 훨씬 쉬워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기준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모르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게 된다.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면서 타인과 경쟁한다. 그 경쟁에서 이겨야 좋은 인생, 성공한 인생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남과 경쟁하여 이기려는 것에서 성취욕과 즐거움을 찾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쟁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모른 채 남과 경쟁하는 데만 에너지를 쏟다가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하는 이들이 주위에는 아주 많다. 그 후회가 닥치기 전에 한번, 내 마음대로 살아 봐라.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내 삶의 리더가 된다.

내 삶을 누가 리드했느냐에 따라 삶의 성공이 결정된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휴식마저 사람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만 버리면 보이는 것도 많고 즐길 수 있는 것도 많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편하고 즐겁게 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나만의 진짜 휴식이다.

혁신이라고 하여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규범은 과감히 버리고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 가정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서로가 변하기를 기대할 뿐 좀처럼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없던 것으로 하거나 참거나 아니면 피하려고 하지, 정작 문제의 핵심을 직면하면서 개선하거나 풀어 가려는 모습은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 갈등은 언제나 똑같은 문제를 놓고 똑같은 감정 싸움이 반복된다. 게다가 나이 들면 힘이 빠지고 지치니 더욱 비켜 가려 할 뿐 해결 의지는 적어진다. 

늙음이 머지않아 닥쳐올 일이라면 그날을 위해 늙음을 공부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설계를 세우는 것이다. 계획하고 가꾸지 않는 노인의 삶은 당사자만 힘든 게 아니라 자녀와 이웃 등 주위 사람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첫째,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회 활동을 중지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은둔형이다

둘째,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자학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사는 것이 치욕스럽다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넷째, 무장형의 노인도 있다. 젊었을 때보다 더 열정을 쏟으면서 살아가는 노익장들이다.

마지막으로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노인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경과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상적인 노인의 삶이다.

성숙형 노인들은 서양 속담처럼 마치 앙금이 없는 포도주와 같다. 좋은 포도주는 오랜 숙성을 통해 앙금마저 녹아 버려 투명한 빛을 띤다. 이들은 표정부터 편안해 보인다. 자기중심을 잃지 않지만 부드러운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갖추었다. 우리가 소망하는 ‘곱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성숙한 유형의 노인일 것이다.

아름다운 노년 만들기의 핵심은 자기에 대한 성찰과 변화에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는 내 몫이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들에게 해 주는 일은 해결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동기를 부여해 주면 일어나는 것은 환자의 의지에 달렸다. 우울증 극복의 첫 단추는 슬프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데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숙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 부모는 자식이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외적 대상이다. 부모보다 더 뛰어나고 월등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의 삶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부모이건 자식에게 미움을 받는 시기가 있다. 자식에게서 미움 받지 않는 부모는 없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것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의미가 있다. 의미 있는 노년을 꿈꾼다면 받아야 할 것들을 챙기기 전에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까 봐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 부디 하릴없이 시간을 버리지 마라. 아프다는 하소연, 신세 한탄, 심심풀이 잡기로 낭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부부 생활의 가장 중요한 팁이라면, 서로의 공통점은 나누고 나쁜 점은 모른 척 덮어 주는 것이다. 그 나쁜 점의 기준이 패가망신하는 일이 아니면 덮어 주어야 한다

평생 의사로서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환자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은 줄지 않았다. 그것은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의사로서의 건강한 직업 정신이다. 옛 환자를 만나 “지금 도움이 되셨나요?”라고 묻고 그 대답을 기다리면서 두려웠다고 쓴 구절을 읽으며, 이 대목은 의사인 딸이 누구보다 잘 이해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환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당연한 것으로 알아야 의사로서의 직업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