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번째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아픔이길이되려면-김승섭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사회적 원인으로 야기되는 고통을 개인적인 범주로 국한하여 생각하지 말자.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한 일련의 상황들을 사회에 책임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책임을 흩어버리는 효과이기에 저자의 주장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세월호와 노동자들의 고통을 동일시하는 부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4) 다시 읽는다면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읽겠는가?

  •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 후에 전체적으로 다시한번 읽어볼 것 같다.

5) 어떤 점을 배웠는가?

  • 나의 생각의 수준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와 구성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시간이 흘러 경험과 사회적 위치가 변한다면 현재의 관점에서의 생각과 미래의 특정 시점에의 생각이 달라질까. 확인해봐야 겠다.

책속의 한구절


오늘날 우리는 가난이, 또는 경제적 결핍과 사회적 폭력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혈중 코르티솔cortisol을 높이고, 그 결과 심장병,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병 발생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입니다. 코르티솔을 분비하는 신체기관은 신장 위에 있는 부신adrenal gland입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많이 사용하면 근육세포가 커지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몸에서 일상적으로 코르티솔이 더 자주 더 많이 분비되면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것이지요. 1930년대까지 이러한 사실을 학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가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요. 대부분의 시신에서 부신은 커져 있었으니까요.

현대사회 가난의 원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겪는 상황은 몇가지 상황으로 요약된다.

건강 악화로 인한 노동력 상실, 정신적/육체적 장애로 인한 노동시장 진입 불가 상태, 보증/사업실패/투자실패 로 인한 과도한 대출을 통한 빚

가난은 사회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지만, 국가의 경제수준이 열악한 상황이 아니라면, 개인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노인, 장애인, 미혼모 가정 등의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가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더 안좋을 수 있다.

문제는 가난한 상황이 아니라, 가난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자세이다.

가난하지만 거대 도시의 사회 속에 살아가지 않고 사회에서 어느정도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적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사회가 가난한 개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가정은 일반화 하기 어렵다. 되려, 어떤 경제적 환경에 놓인 사람이든 도심으로 몰려가는 현상이 문제이지 않을까. 더 안정적인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크리거 교수는 말합니다.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이라. 사회적 정치적 상황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일텐데 결국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하고자하는 바는 질병의 원인을 당사자 개인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책임자를 찾아보자는 것인데.. 내가 자본주의에 찌들어 살며 생각까지 굳어버려서 그런지 동의가 잘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코 질병으로 끝나지 않고, 각종 범죄, 규제, 지원정책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범위이다. 다시 말하면 거시적인 관점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관점은 사회적인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이후 지금까지 29명이 뇌출혈로, 심장마비로, 당뇨 합병증으로 죽어갔습니다.(표3)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습니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사람을 피하며 고립에 시달리던 이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해고된 ‘죽은 자’와 그의 아내가 있었고, 해고되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던 ‘산 자’도 있었습니다. 2009년 4월 발표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2,646명의 정리해고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눴지만 결국 그들 모두를 병들게 했던 것입니다.

쌍용자동차의 사태로 인한 고통으로 29명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29명을 이야기 하기전에 쌍용자동차 사태를 겪은 표준집단의 수치를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말장난하는 것과 같다.


한국과 같이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없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잘못이 아닌 사용자 측 사정으로 인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뜻합니다. 노동자는 귀책사유가 없지만 생계기반을 잃게 되는 거대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정리해고는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연 해고는 살인일까?

실직이 개인에게 주는 사회적인 압박감을 개인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삶의 의미를 직장과 돈에 90%이상 가치를 두고 일상의 변화나 새로운 시도없이 살아가려는 개인을 나약하다고 평가해야할까.


가장 위험한 작업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넘기는 외주화가 지속되고 확대된다면,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국내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인도나 중국의 누군가가 제2의 황유미, 제2의 이숙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원래 그랬다. 내가 위험하고, 어려운 것들은 남에게 책임 지웠다. 인간의 속성이 본디 그러하다. 새삼스레 바라볼게 아니다. 전혀 없던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난듯 바라볼 것이 아니다. 인간의 깊은 본성은 본디 악하다.


1995년,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린 이 논문은 고용불안이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말합니다. 특히 같은 기간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았던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비교했을 때, 그 결과는 도드라졌습니다.1 이후 행해진 연구들은 고용불안이 천식을 증가시키고,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 해고되지 않았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노동자의 삶을 잠식하고 몸을 아프게 했던 거지요.2 3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튼튼하다는 노동조합의 구성원이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인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현재의 내 직업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48퍼센트에 해당하는,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가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합법적 해고를 추가했습니다. ‘공정 인사 지침’이라 불리는 이 행정지침의 핵심내용은 ‘저성과자 해고’입니다. 회사가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노동자에게 교육과 전환배치 등의 조치를 취한 후, 변화가 없으면 해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절차가 합리적이고 투명한 해고 과정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명문화된 이 조치가 무엇이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개인에게 기회를 주고 조직에 도움이 되도록 돕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전공의 특별법> 제정은 그동안 수련의 이름으로 가혹한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스스로의 건강을 챙길 수 없었던 전공의들과 그들이 돌보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변화입니다. 장기적으로 <전공의 특별법>이 사문화된 법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지원과 감시가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더해 많은 전공의들을 괴롭히는 환자, 보호자, 상사로부터 경험하는 직장 내 폭력에 대한 제도적 대책도 향후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생각만으로 목이 메지만, ‘제 딸아이가 세월호를 탔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아닐 거예요. 아닐 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배에 탔던 아이들은 그 상식을 지켰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아이를 교육할 때 말 잘듣는 아이가 아니라, 질문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하는 이유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일상적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에,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에 상처가 남아 생기는 질병입니다.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한 경우, 몸이 계속 각성되어 쉽게 깜짝 놀라는 과민반응을 보이고Hyperalertness, 충격적인 사건을 마음속에서 계속 다시 경험하게 되며Re-experience, 감정적으로 마비되는Avoidance 증상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게 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말합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지요.9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게 되고 그것이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운이 없었다고,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말하는 입장과 과연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세월호와 한국사회의 모순을 마치 비슷한 류의 일인것 처럼 분류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의학적으로 발견된 첫 AIDS 환자는 1981년 미국의 동성애자였지만, 1970년대 후반에 케냐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후에 알려졌습니다. 원인인 바이러스 규명과 함께,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자연히 HIV 감염을 동성애 질환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의학적으로 근거를 잃게 되었지요. 동성 간 성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HIV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며, 파트너가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성 간, 동성 간 성관계 모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상으로 진행되는 따돌림으로 인해 뇌 전두엽의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부위가 활성화됐습니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통증을 경험하면, 즉 누군가가 나를 때려 아픔을 느끼면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에 혈류가 모인 것입니다. 우리 뇌가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을 같은 뇌 부위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연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그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모욕과 차별을 경험하고 부당하게 공동체에서 배제될 때, 피해자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차별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고 이 실험을 노동자, 교사 등 다양한 집단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행합니다.


누군가 반문하기도 합니다. 가벼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성폭행이나 살인으로 들어온 이들에게도 그런 치료를 해주는 게 맞느냐고,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어찌 답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하곤 했습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혜택을 받기 위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성폭행이나 살인을 저질렀을까? 단순하고 일시적인 충동적 결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다만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적 장애 상황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에게는 인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남은 자들의 고통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별장에 쉬러간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의 고통을 짋어지기 위해 사회적으로 약속된 공간에 격리되는 것이다.


리사 버크먼은 사회적 관계망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합니다. ‘버크먼-사임 사회적 관계망 지표The Berkman-Syme Network Index’라고 이름 붙은 이 측정도구는 결혼 상태, 친구나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사회성, 교회에 다니는지, 지역사회에서 다른 조직 활동을 하는지 등을 측정해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의 정도를 등급화하고 그에 따라 사망률의 차이를 비교합니다. 그 결과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1.8배에서 2.7배가량 사망률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밝혀집니다.(그림17)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더 오래 산다는 결과입니다.6


《미국의사협회지》에 「사회적 관계와 감기 취약성Social Ties and Susceptibility to the Common Cold」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판됩니다.12 같은 조건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점액이 덜 만들어지고 코에 있는 섬모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바이러스를 외부에 덜 유포시킨다는 결과를, 즉 감기에 덜 걸린다는 실험 연구가 출판된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양극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관계망도 역시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인간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다만 양극화의 가장 낮은 계층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자기 낙인화로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