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번째책] 다상담 소비,가면,늙음,꿈,종교와죽음편 강신주

강신주-다상담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저자는 자본주의가 현대인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뿌리박혀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 자본주의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의 인정받으려는 욕구임을 정의한다.
  • 결론적으로 인간이 돈으로 욕구를 채우려는 현상을 이용한 체제가 자본주의이다.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자본주의에 찌들은 세상이 안타깝다. 종교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모두가 자신들이 얼마나 자본주에 찌들었는지 반성하지 않은채 대중을 향해 떠들어대고 있다. 미련한 인간을 따른다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는 듯 하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자본주의에 취약한 인간의 핵심 본질인, 욕망을 다루는 부분.

4) 다시 읽는다면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읽겠는가?

자본주의는 우리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그 욕망을 증폭시키니까요. 여러분 사랑받고 싶죠? 오케이. 사랑을 줄 거예요. 그 제품만 사면. 이건 너무 매력적인 유혹 아닌가요?모든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죠? 명품 가질 때 왜 좋아요? 그걸 갖게 되면 행복하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나를 모두 찬양하고 주시하는 것 같잖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나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무시라는 건 보지도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명품을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피력해요. 스마트폰을 처음에 왜 바꿔요? 그거 갖고 있으면 그거 어디서 구했냐면서 나한테 관심을 갖잖아요. 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자본주의에는 있어요. 소비의 자유죠.

우리 시대의 소비는 욕구불만을 채우는 과정이죠. 불행을 치유하는 과정처럼 돈을 쓰잖아요. 주인이 되는 느낌으로 쓰죠. 그리고 그 상품을 내가 갖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돈을 쓰잖아요. 이런 걸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행복한 상태로 있는 거예요. 그걸 모색하셔야 되는 거예요.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해 주는 표어를 하나 알려 드릴게요. ‘아님 말고.’ 수동적인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잘해 줄 만큼 잘해 준 다음에 결과가 안 나오면 마는 거예요. 아님 말고. 그런데 우리는 항상 그 대가를 생각해서 힘들어요. 무언가 와야 돼요. 남루하고 쓰레기 같은 거예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이 생산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걸 생산하는 방법이에요. 글을 하나 쓴다거나 텃밭을 일구는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걸 생산하면 삶의 질은 굉장히 많이 올라가요. 그 행동의 주인이 나이니까요. 그런데 누구 돈을 받고서 제품을 만들거나 개발하면 자긍심이 없어요. 돈 많이 벌어서 뭐해요. 물건을 사도 그 물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진정한 자유는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 자체를 만드는 거예요.

꿈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허무한 것으로 들으시면 안 돼요. 충만해지는 삶을 사시라는 거예요. 꿈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는 다른 경우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요. 인생은 소요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 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예쁘고 멋있는 거예요. 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5) 어떤 점을 배웠는가?

  • 세상의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않고, 삶의 충만감을 위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
  • 남이 맞다고 한 길에 대해 의심을 품지않고 무턱대고 따라다니지 않는 침착함.
  • 맹목적인 믿음과 신뢰가 가져오는 폐해.
  • 욕망의 충족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리고 자신의 내면을 속이며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

책속의 한구절


결과적으로 우리가 돈 가지고 사는 게 뭐죠? 스마트폰, 옷, 신발 등등. 모두 자본이 만든 것들이잖아요. 여행을 가도 대자본이 만든 리조트 등에서 돈을 쓰지 않나요? 우린 그 메커니즘에서 계속 움직여요. 이렇게 상품을 만든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상품을 사면서 우리는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정리해고되고, 마침내는 병들어 죽어요. 그러면 또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서 스펙 쌓아서 돈 벌어서 물건을 사고 쓰다가 죽어요. 그렇지만 자본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자본주의를 붕괴시키는 방법을 알려 드려요? 우리가 다 죽으면 돼요. 우리가 다 죽어서 물건을 안 사면 되니까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모습이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이 느낌이야말로 우리가 정확하게 자본주의를 이해할 때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지폐 태우면 여러분은 소리를 지르잖아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어떻게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돈을 태울 때 왜 여러분들은 경악하는 걸까요? 그건 돈에서 종이 이상의 것들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종교인 거죠. 여러분은 이미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돈이 있으면 우월해요. 그래서 정상적인 경우라면 돈이 있는 사람은 우월감을 느끼죠. 돈이 많을수록 굉장히 우월한 거예요. 돈을 갖고 있으면 이걸 사도 되고 저걸 사도 돼요. 그런데 돈을 주고 상품을 구매하면 우리에겐 돈이 사라지고 그 상품만 있게 돼요. 이럴 때 우월감은 봄눈 녹듯이 사라지기 쉽지요. 돈을 가진 사람에게 우월함을 보장하고, 상품을 가진 사람에게 열등함을 부여하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특징이에요.


자본주의는 여러분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대학까지 가서 왜 공부해요? 우리의 상품 가치를 올리는 거잖아요. 질 좋은 담수원을 얻어 생수의 가치를 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서울대 생수냐, 지방대 생수냐, 전문대 생수냐, 고졸 생수냐. 현저히 달라요. 심지어 더 비싼 생수도 있죠. ‘에비앙’ 같은 비싼 생수는 스탠포드 생수, 하버드 생수인 거죠. 그러면 비싸게 팔려요. 물론 비싸게 사 가는 인간들도 그걸로 돈 벌려고 사 가는 거죠. 여러분 그렇게 살아오셨죠? 왜 1등을 하려고 해요? 수능 보고 1등급, 2등급 이야기하죠? 그거 너무 창피하고 슬픈 거 아니에요? 누가 뭔데 나한테 등급을 매겨요? 소고기도 아니고. 여러분 고등학생 때 수능 등급 낮게 나오면 슬펐죠?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들어갈 대학이 달라지고 취업되는 곳이 달라지니까 슬픈 거예요.


소비의 욕구요? 그 욕구가 뭔데요? 간신히 자유의 느낌, 주인의 느낌을 얻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가부장적이고 어머니가 소심한 분일수록, 어머니는 소비를 많이 해요. 물건을 살 때 주인이라는 느낌이 확 오거든요. 백화점에 가 보면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어요. 그리고 오후 4시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싹 사라져 버리죠. 백화점에서 그분들이 뭐하는 것 같아요? 남편 이 새끼가 돈 좀 번다고 나를 함부로 대해요. 그 굴욕을 참았으니 사모님 소리는 들어야죠. 이 메커니즘이 이해가 되시나요?


내가 어떤 굴욕으로 돈을 벌었는지 잊고 싶을 때, 억압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물건을 사고 싶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거나 누가 날 강제할 때 물건을 사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비를 할 때는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전지전능함을 느낄 수 있잖아요. 돈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무슨 상관이에요? 고를 수는 있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딱 하나 있는 자유가 바로 소비의 자유죠. 소비할 때 자유롭다고 느끼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요.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돈의 노예인 걸 허용해야 소비의 자유도 가능해져요


자본주의에 찌든 사람이 생각하는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도 무엇도 아니고 단지 소비의 자유일 뿐이에요. 돈을 쓸 수 있는 자유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일까요, 돈이 떨어지면 자유가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거예요. 당연히 또 돈을 벌어야 하는 거예요. 돈을 또 다 쓰면 다시 부자유스럽고요. 그래서 다시 목숨 걸고 돈을 버는 거예요. 벌고 쓰고 다시 벌고 쓰고 하면서, 우리의 내면에는 소비의 자유를 제외하고는 어떤 자유에 대한 감각도 남아 있지 않게 되지요. 이건 결국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저나 여러분은 오늘도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자본주의는 우리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그 욕망을 증폭시키니까요. 여러분 사랑받고 싶죠? 오케이. 사랑을 줄 거예요. 그 제품만 사면. 이건 너무 매력적인 유혹 아닌가요?모든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죠? 명품 가질 때 왜 좋아요? 그걸 갖게 되면 행복하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나를 모두 찬양하고 주시하는 것 같잖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나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무시라는 건 보지도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명품을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피력해요. 스마트폰을 처음에 왜 바꿔요? 그거 갖고 있으면 그거 어디서 구했냐면서 나한테 관심을 갖잖아요. 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자본주의에는 있어요. 소비의 자유죠. 우리가 자유롭다는 건 소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알죠. 돈이 없는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어요? 진짜 주인은 돈이란 말이에요. 노숙자한테 무슨 자유가 있어요? 돈 없으면 자유도 없죠. 여행은커녕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사랑이든 여행이든 작품 활동을 하든 제대로 주인답게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소비가 주는 일시적이고 허구적인 자유에는 그만큼 덜 빠져들게 될 겁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라는 사회학자가 《소비의 사회》에서 말하죠. 우리의 소비가 변했다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품이 아니라 제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고요. 생활에 편리한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사는 거예요.


우리 시대의 소비는 욕구불만을 채우는 과정이죠. 불행을 치유하는 과정처럼 돈을 쓰잖아요. 주인이 되는 느낌으로 쓰죠. 그리고 그 상품을 내가 갖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돈을 쓰잖아요. 이런 걸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행복한 상태로 있는 거예요. 그걸 모색하셔야 되는 거예요.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해 주는 표어를 하나 알려 드릴게요. ‘아님 말고.’ 수동적인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잘해 줄 만큼 잘해 준 다음에 결과가 안 나오면 마는 거예요. 아님 말고. 그런데 우리는 항상 그 대가를 생각해서 힘들어요. 무언가 와야 돼요. 남루하고 쓰레기 같은 거예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이 생산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걸 생산하는 방법이에요. 글을 하나 쓴다거나 텃밭을 일구는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걸 생산하면 삶의 질은 굉장히 많이 올라가요. 그 행동의 주인이 나이니까요. 그런데 누구 돈을 받고서 제품을 만들거나 개발하면 자긍심이 없어요. 돈 많이 벌어서 뭐해요. 물건을 사도 그 물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진정한 자유는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 자체를 만드는 거예요.


다른 이유를 들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는 노력을 하나씩 접으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의심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대개 거길 가기가 힘들 것 같으니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의심한다고요. 이분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죠. 자본주의가 어떻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도 괜찮은 건가 등등. 지금 비겁해진 거예요.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내 월급을 충실히 모으면 더 풍요로운 생활을 기대할 수 있던 과거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시절이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돈을 모으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 버렸죠. 물가는 너무 빨리 뛰는데 그것을 따라잡을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이 줄어들어 버렸으니까요. 지금은 비정규직과 실업이 난무해서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불행한 시대니까요.


자신의 맨얼굴을 무시하고 주어진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을 서양에서는 인격이라고 이야기해요. 인격이 영어로 무엇인지 아세요? ‘퍼스낼리티Personality’예요. ‘페르소나를 유지함’ 정도의 의미일 겁니다. 슬퍼도 기뻐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쁨을 표시하고, 기뻐도 슬퍼야 할 상황이라면 슬픔을 표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퍼스낼리티’를 갖춘 사람, 즉 인격자라고 불렸던 겁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선행 학습을 시킨다고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아이가 나중에 불만을 토로할 수 있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부모에게 나한테 해 준 게 뭐냐고 할 때를 대비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상처받을까 봐 좋은 부모라는 가면, 아니면 최소한 최선을 다한 부모라는 가면을 쓰는 거예요. 이런 약한 부모들은 아이에게 맨얼굴을 보이지 않아요. ‘이놈아 돈 없어’, ‘너는 머리가 나빠서 학원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 이런 이야기가 속에 꽉 차 있어도 나중이 두려워 말을 못 하는 거지요. 아이일 때도 가면을 쓰고, 부모가 되어서도 가면을 쓰는 셈이죠. 이처럼 죽을 때까지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입 사원 때 가면을 쓰고 과장 때도 가면을 쓰는 식이죠.


가면을 죽을 때까지 쓰다가 죽는 인간이 있고, 언젠가는 벗는 인간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인간이 됐을 때, 우리는 강해진 거예요. 한 번 제대로 어른이 된 거고요. 우리처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거나 벗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어요. 그러니까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한다는 거죠. 언제 가면을 쓰고 벗는지 잘 몰라서 차라리 계속 가면을 쓰고 있는 정말로 약한 사람들도 있죠. 계속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가면이라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반면 가면을 벗은 뒤 계속 맨얼굴로 당당하게 사는 아주 강한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이 사람도 가면을 벗는 과정을 거친 거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사는데 가끔 벗기도 하면서 살아요. 물론 맨정신으로 가면을 벗기가 힘드니까, 술이나 마약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요. 아니면 간혹 실수로 가면이 툭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누구의 선배고 상급자라면 후배들이 가면 벗고 나오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제발 가면 쓰고 진실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을까요? 어디에든 여러분보다 약자는 있어요. 그럴 때 여러분은 약자들에게 가면 쓰기를 요구하고 싶을 거예요. 그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 여러분은 자신보다 약했던 사람들이 맨얼굴로, 그러니까 진실로 가면을 벗고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 해요.


자본주의 사회는 최신 제품이 우리를 규정해요. 최신 제품을 다루지 못하면 낡은 사람, 즉 나이 든 사람이 되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은 불필요한 존재예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노인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노인들은 기기도 못 다루고 신제품을 못 따라가요. 이렇게 불필요한 존재 같고 심지어 젊은 세대들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만큼 서러운 감정도 또 있을까요. 이건 모두 자본주의 메커니즘 때문이에요. 자본은 신제품을 만들어서 확 팔아먹어야 하잖아요. 신제품이 나올 때 사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요? 나이 드신 분들은 아니죠. 그들이 새로운 제품에 간신히 적응을 하면, 또 신제품이 나와요. 당혹스러운 일이지요


자본주의가 만든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갈등을 확대하고 증폭시키면서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잖아요. 자기들은 경로사상에 입각해서 나이 든 세대들을 존중한다면서요. 좌우지간 나쁜 권력은 이간질을 시키고, 좋은 대표자는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요.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자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깨알같이 쪼개는 거예요.


대개 꿈은 내가 현재 누릴 수 있고, 즐거울 수 있고, 만끽할 수 있는 것들을 억압하도록 만들어요. 꿈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왜 꿈을 찾아요? 그 꿈이 있으면 자신의 현재 삶을 억압을 해야 되는데.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이 꿈이 있는 게 당연하고, 심지어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도, 체제도, 정치권력도, 자본도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죠. 꿈을 가지라고.


꿈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허무한 것으로 들으시면 안 돼요. 충만해지는 삶을 사시라는 거예요. 꿈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는 다른 경우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요. 인생은 소요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 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예쁘고 멋있는 거예요. 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