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번째책]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 진오스님

혼자만깨우치면뭣하겠는가-진오스님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한국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환경과 개선을 위한 관심을 호소한다.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 열일 제쳐두고 돕는 사람들이 있다.

  •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들도 두가지 분류가 있다.

  • 하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돕는 사람.

  • 하나는 사회적, 정치적 이미지를 생각해 돕는 척 하는 사람.

  • 언론, 방송, 책을 통해 떠들썩하게 남을 돕는다며 생색내는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정치적 이미지를 위한 활동일 때가 많고,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가 세상에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 물론 내 주변에도 보이기 위해 착한척을 몸에 두르며 사는 사람이 있다. 남들이 보일때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내쳐버린다. 한마디로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 소위 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신도들을 부려먹기 위해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종교인들이 천국에 가는것이 제일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마라톤을 위해 승복을 벗고, 동료 스님들과 종교계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꿋꿋이 한걸음한걸음을 내딛는 부분.

  • 사실 이 책을 고르게 된건 마라톤 하는 스님이 신가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저자가 뛰었는지는 살펴보지도 않은 채 달리기의 내용이 주로일 것 같아 책을 골랐는데. 얼마 읽지 않고 내려놓았다.

4) 다시 읽는다면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읽겠는가?

  •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 몇백 킬로를 마라톤하는 부분. 단 몇십킬로 마라톤도 죽을둥 말둥 하는 달리기 실력인데. 참으로 대단하다.

5) 어떤 점을 배웠는가?

  • 목적이 있는 달리기. 나는 아무 목적없이 단순히 마라톤을 완주해보자는 목표밖에 없었다.

  • 어제 마라톤을 연습하며, 일본마라톤 대회에서 상위권을 입상해봐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 사회적자본이 성숙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병폐/적폐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즉 시민들이 의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결코 지금보다 경제적, 사회적 여건들이 나아질 수 없다.

  •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사회적자본, 즉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치는데 종교의 역할이 컸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하다. 되려 종교인들의 불법과 탈세가 당연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기본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사회적자본의 축적을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책속의 한구절

불교가 이야기하는 보시(布施)에는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주는 사람이 줬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둘째, 받는 사람이 받았다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셋째, 건네지는 마음과 물건이 나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도둑질을 해서 주면 안 되고 도박을 해서 나누어도 청정하다 할 수 없다. 남의 것을 착취해서 주는 것도 안 된다. 이게 불교가 가진 보시의 가르침이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곁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달리는 것을 선택했고, 철인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명성을 얻은 만큼 더 많은 거리를 뛰어야 했다. 무릎의 통증을 느껴도 손목 골절상을 당해도 나는 죽지 않을 만큼 뛰었다. 뛰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그들을 돕는 방법 중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뛰는 것이었고, 사실 가진 것도 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토안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하지만 그들은 희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족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희망이라고 말했다.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모든 이주노동자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순한 눈빛에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의 형제자매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 동생에게 하얀 운동화를 사줄 수 있다면,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맛있는 점심 도시락을 싸줄 수 있다면, 아버지의 약값을 보탤 수 있다면, 그들은 이런 작은 희망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절실한 소망이 된다.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 새 공책 한 권, 깨끗한 가방 하나가 무엇보다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 가족에게 그것을 마련해주기 위해 먼 땅에서 아파도 참고 견디며 아프다는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희생을 감내하는 사람들, 나는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의 꿈이 허황되지 않은 소박한 꿈이기에 그렇다. 충분히 이룰 수 있는 희망이기에 그렇다.


16시간 45분 59초, 골인 지점에서 토안과 그의 아버지 반디가 태극기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뭉클한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땀을 닦는 척하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물을 훔쳤다. 토안의 안타까운 소식과 모금 마라톤이 알려지면서 한 달 동안 후원금이 이어져 750만 원이 넘게 모였다. 이 후원금은 토안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값진 보석이었다.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볼 때가 있다. 부처님의 자비가 과연 이런 양심불량의 중생들에게도 필요할까. 스님도 인간이어서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될 때가 있다. 소위 머리에서 김이 펄펄 나는 일과 마주할 때마다 새삼 속세에서 사는 게 더 힘든 수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화폐로 따지는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행복하고 단단해야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여유가 생긴다.


“때리지 마세요.” 이 말은 이주노동자는 물론 이주여성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한국말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이와는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구타가 끊이지 않는 듯하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욕을 호칭으로 쓰는 한국사람도 더러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사서 하는 고생이니 뭐라고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 또한 인연에 의해 시작된 일이니 하기 싫다고 쉽사리 도망갈 수도 없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 인연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있는 인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