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번째책] 이우학교이야기 정광필

이우학교이야기-정광필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가정환경에서 받지 못한 격려와 신뢰를 학교라는 시스템속에 녹여내어 학생들의 정신적인, 학습적인 성장을 가져온 이우학교의 이야기.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꼭 좋은 학교, 특별한 학교를 가야만 자아가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지지하고, 지혜롭게 양육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입시위주로 구성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을 단순히 성적을 내야하는 학습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바라보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어른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고민들과 상처들을 공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

4) 다시 읽는다면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읽겠는가?

  • 초반부, 이우학교의 핵심가치와 자존감과 건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들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요소들을 강조한 부분.

5) 어떤 점을 배웠는가?

  • 학습의 양이아닌 질, 부모의 무조건적인 기대가 아닌 진정한 신뢰,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책속의 한구절

이제 6년쯤 세월이 흐르고 나니까,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아이들 하나하나마다 성장의 계기도 다르고 성장 속도도 다르며 성장 유형도 조금씩 다르다. 그런 만큼 교사나 부모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고 줄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적절한 계기와 여건을 마련해주고, 스스로 도전과 좌절, 성취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도록 믿고 격려하며 기다려줘야 한다.

부모가 결코 해서는 안 될일이 비교라는데, 그게 과연 쉬울까. 친지나 지인 중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비교가 절로 되지 않을까.

다른아이와 비교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아이가 부모의 기대에 못미치는 행동을 했을 때 일련의 과정으로 발생한다.

부모로부터 비롯되는 .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인내하지 못하고 말을 내뱉는 상황을 주의해야겠다.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타인과 나를 비교해서 이야기한적이 한번도 없다. 물론 커가는 도중이나 지금도 여전하다.

타인과 비교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도 이 부분을 공감하거나,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생각했겠지만. 각별히 주의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교육이란 게 참으로 오묘하다.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의 빈 부분을 채우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나서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이 아이들 내면에서 조금씩 자랐던 힘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런 전환점을 거치고 나면 그간 낱낱으로 흩어져 쌓였던 여러 경험이 연결되어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이를 발판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아주 쉬워진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나서는 순간. 나는 언제부터였을까.

군인시절, 재수를 포기하고 다시 프로그래밍언어 공부를 시작할 때가 아닐까.

아마 상병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 또한 내가 선택했기에 다른 전공을 찾아나서기엔 불분명한 시기였고, 다른 전공을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전공을 잘 살려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 나서는 순간은.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일 것이다. 부모나, 선생 또는 타인의 권유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연습을 어릴때부터 습관이 되도록 부모가 도와야한다. 그래야만 어른이 되어서 인생을 주체적으로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은 위축되고 영혼은 상처 받는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격려해줄 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며 뭔가를 도모할 때 비로소 내면의 힘을 성장시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이 시대의 요구에 답하는 능력과 의지도 갖추게 된다.

아이이기에 실패할 수 있고, 아이이기에 실수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아이들의 특권이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한 부모들은 실수하고, 실패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스스로를 견뎌내지 못한다.

실수와 실패를 격려하고 신뢰해주는 것이 부모와 자녀간의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집안에서 부모님이 지민이에게 거는 기대와 그로 인해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민이가 게임에 탐닉하거나 방 청소를 게을리 할 때 부모님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논의했다. “게임 좀 그만하고 이제 공부 좀 하렴” 하는 식으로 ‘너의 행동’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기보다 “네가 게임에 빠져 있으니 나는 네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 같아 무척 속상하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는 식으로 ‘나 표현법’을 자주 쓰는 게 좋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학년팀 선생님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사실 지민이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남달리 큰 아이다. 집에서는 무슨 일이든 자기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동생과 비교 대상이 되었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보다는 교정되어야 할 아이로 평가받았다. 그러다 보니 지민이의 내면에서는 내 기준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맞추려는 욕망이 자랐고, 이는 결국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처럼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 경우 아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는커녕 방관자가 되거나 더 심한 경우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낮은 성적, 나태한 생활태도, 피시방 게임과 판타지 소설에의 탐닉은 무엇인가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주의를 집중해야 할 곳이 바로 원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외면하고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과 판단을 심어주고 그 결과로 아이가 변하기를 기대해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아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힘으로 자신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변화의 동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은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속도로 성장하리라고 가정하면 단선적인 비교를 피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옆집 아이, 내 친구 아이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 각자의 성장시계는 다르다. 속도와 시간은 물론 성장의 경로와 방향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의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을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오만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가운데 시의적절한 때를 만나 나비가 껍질을 벗고 날듯이 배움을 향해 힘차게 점프한 것이다. 아이들은 믿음을 발판으로 점프한다.


상균이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지 못했던 성장 과정을 자기의 언어로 정리한 것이다. 헨리 지루Henry Giroux가 저서 『교사는 지성인이다Teachers as intellectuals』에서 말한 것처럼 교사들은 살아온 경험, 특히 학생의 삶에 희망과 가능성을 주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어떻게 의미가 구성되는지를 학생 자신으로부터 찾아내야 한다. 즉, 아이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그 힘으로 참된 자기를 찾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지닌 슬픔을 감지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를 대신해서 판단을 내려주어서는 안 된다.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아이여야 한다. 먼저 판단하지 말고 학생의 슬픔에 공감하자


우리는 학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와 씨름해야 참다운 학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학습의 양보다 학습의 질이며,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의 탐구식·토론식 수업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 교육과정이 일반학교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했다.


아이들은 왜 사교육을 받게 되었을까? 자신의 학습능력과 의지력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리고 “사교육을 금했으면 학교가 끝까지 책임져줘야지 학교는 뭐했느냐”는 학교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품고 있다. 이들의 불신은 부모가 아이의 내적 힘을 믿지 못하고 학교의 교육철학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충분한 신뢰감을 주지 못한 학교 측 책임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렇듯 사교육은 못 믿는 데서 시작된다.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서 지향하는 수업 개혁의 방향은 무엇일까? 사또 마나부 선생에 의하면 학교의 책임은 훌륭하고 멋진 수업을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아이들의 학습 부진 혹은 학습동기 부족이 대부분 자기효능감(자신감)과 대인유능감 부족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고 보니 연우처럼 제 눈을 피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좋은 수업 만들기’를 통해 이우학교의 교사와 학생,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좋은 수업이란 결국 교사와 학생이 함께 소통하고 노력할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교사만의 책임도, 학생들만의 노력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왜 배우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