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번째책] 플라이백 박창진

플라이백-박창진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회사외 직원, 갑과 을의 관계에서 노예처럼 인간의 존엄이 짓밟힌 상황의 반복을 막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기업과 직원, 기업이라는 이름뒤에 감춰진 직원들의 권리와 존엄성

  • 직원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누구도 직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조현아 부사장이 사건이후 다시 경영권에 복귀하고, 박 사무장은 수술을 하게 되는 시점에,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비리가 밝혀질 때 속이 다 시원했다.

  • 약자의 편도 아니고, 사실을 전달하는 의무를 지키려는 사명을 가진것도 아닌 언론, 오로지 가십거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이애나 처럼 달려드는 기자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라고는 하지만 참.. 비열하다.

4) 어떤 점을 배웠는가?

  • 앞뒤좌우위아래 다 막혀버린 상황일수록 지혜로와야 한다.

  • 박창진 사무장이 수많은 결단의 상황들마다 자신을 지키는 힘은, 수많은 책을 통해 연습된 사고력과 판단능력이지 않았을까.

5) 저자에게 한가지 꼭 묻고싶은게 있다면?

  •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바른 선택과 결단들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정치계에서 박창진 사무관에게 눈독을 들이고 정계입문의 제안을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시겠는가.

책속의 한구절

오래전부터 인간이 나이 들면서 현명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접하는 세상의 폭이 좁아져 편협해지고 아집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늙고 싶지 않았다. 아니 비록 나이가 들지라도 젊게 사유하며 살고 싶었고, 세상의 진리를 직접 몸으로 체득하고 싶었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책은 그런 내 바람을 충족해주는 도구이자 친구였다. 표현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책 속에 이 세상의 보편적 진리와 불변의 명제가 숨어 있다고 믿었고, 그런 이유로 학생 때도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생각의 파편은 약 4년 전 생애 가장 큰 시련이 닥쳐왔을 때 나를 붙잡아준 원동력이 되었다. 하루하루 모든 게 괴롭고 어지럽던 그 시절, 그나마 내 안의 생각을 정리해 사람들에게 말로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책으로 쌓아올린 자양분 덕분이었음이 틀림없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친숙한 분야에 대한 지식만을 탐닉하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편헙한 아집에 사로잡히게 된다.

잘 알지못해 불편한 분야에 대해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여야 만한다.

책읽기 또한 이와같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거나, 행간을 읽어내기 어려운 책들을 무조건적으로 피하다보면, 비슷한 류의 책만 반복적으로 읽는 상황이 발생한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의도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회사와 직원, 갑과 을의 관계에서 노예가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박창진 사무장은 바른 독서를 했기에 지금의 그가 된것이다.


누구나 뜻하지 않게 삶의 궤도에서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지, 어긋난 항로를 바로잡아 정상 궤도로 되돌아올지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플라이 백Fly Back. 비행기를 되돌리는 ‘회항’을 일컫는 용어다. 이제 막 출발한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려야 했던 그날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내 삶을 되찾기 위해 다시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한 번 뒤틀린 삶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내 비행飛行의 기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삶의 주체성을 찾고자 열심히 플라이 백 중이다.

주체성을 찾고자 선택하는 순간부터 고난이 시작된다.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 했다. 예수가 이땅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원하는 것도 주체성을 찾으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주체성을 찾는 것은 나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안전한 모든 상황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아직 인생을 살아오며 주체성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딱뜨리진 못했다.

나의 주체성을 찾아야 하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할까. 저자의 걸음을 활자로 보기엔 쉽지만, 삶으로 녹여내기엔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느냐고 말이다. 땅콩회항이 있은 지 어느덧 만 4년도 더 지났건만 이 모든 일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가해자인 조현아 씨는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 “반성한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시간이 지나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자 스리슬쩍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비록 그 뒤에 그녀와 그 가족들의 다양한 ‘갑질’ 행태가 보도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면서 다시 꼬리를 내렸지만 이제 그 누구도 그녀를 포함한 총수 일가가 진심 어린 반성을 한다고 믿지 않게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이 고난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가해자의 무례함 때문이다.

가해자의 무례함에도 언론과 주변인들은 을인 박창진 사무장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한다.

다 박창진 사무장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결론은 갑인, 오너일가를 위한 입장일 뿐이다.

어느 순간 기업의 자본에 노예가 되어버린 언론매체와 직원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여기고 절대로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아왔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회사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쓸모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신기루는 완전히 사라졌다.

한 개인에게 발생한 집단적 압박을, 내겐 발생하지 않겠지 무시하며, 어떤 동정도 위로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인의 일은 내 일이 아니니깐. 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박창진 사무장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타인의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음을. 강자앞의 약자는 홀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언젠가. 약자가 되는 순간이 오겠지.. 정말 지혜롭게 행동한다면. 강자 앞에 넘어져버린 약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대한항공의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기업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최종 면접을 본 그날, 그 조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강서구 발산동에 있는 대한항공 교육센터에서 면접을 진행했는데, 실내가 너무 조용해 깜짝 놀랐다. 건물이 기괴할 정도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항공 승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직, 해외 파견직 직원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건물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다니. 그만큼 조직 분위기가 억압적이고 활발하지 않다는 증거였던 셈이다.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기업문화의 절반은 경영진의 책임이고, 절반은 중간급 관리자들의 책임이기도하다. 경영진이 잘못된 문화를 추구할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 계층이 중간급관리자들이다.

중간급 관리자들이 입을열기 두려워하게 되면 강압적인 기업문화는 절대 바꿀 수 없다.


사무장은 회장 일가는 아무런 얘기 없이 무사히 내렸고 우리 업무는 잘 끝났다고,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회사의 요청에 나름대로 잘 부응했다는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또한 ‘수많은 승무원 중에서 발탁되었으니 회사에서 조금은 인정받은 걸까’ 하는 생각에 내심 기분도 좋았다. 앞으로 회사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얼핏 했던 것 같다. 착시현상의 시작이었다.


회사와 직원이 법정싸움을 벌일 경우, 회사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소송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회사이므로 경영진 개개인이 받는 금전적·심리적 압박은 없다. 회사 차원에서도 설령 소송에서 진다 해도 어느 정도의 금액만 토해내면 그뿐이라 큰 타격은 입지 않는다. 그러나 직원들은 다르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소요되는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며, 심리적으로도 황폐해진다. 그야말로 개인의 평온한 삶이 파괴된다. 애초에 직원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인 것이다. 이는 다수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피해자는 서서히 고사시키는 세련된 길들이기 전술로서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싸움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곱 명의 동료가 해고됐고 한 사람은 15층 건물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노조 부위원장도 동료가 노조 비용 횡령과 무단결근을 구실로 고소한 탓에 해고당했다. 노조의 버팀목이었던 그에게 가해진 행위를 본 직원들은 울분을 터트리기보단 공포를 느꼈다. 회사의 공포정치에 겁먹은 직원들은 하나둘 현실의 불합리에 입을 다물었고, 이내 두 눈마저 감아버렸다. 공포의 학습효과였다.

강압적인 문화를 가진 대기업들은,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을 텍스트 즉 문자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다.

조직을 소유하고 있다는 마음은 사람을 존재가 아닌 도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조직된 어떤 모임에서든, 발생한다.

즉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모든 조직은 소수의 통치와 다수의 순응으로 귀결되곤 한다.

무조건 소수의 리딩그룹이 나쁜건 아니지만,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되지 않으면,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2016년에야 노조 파괴 전문 회사 출신이 이 당시 회사 노무부 간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노조가 해체되고 철저하게 사라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회사가 노조와 관련된 이들을 탄압하고 직원들을 압박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일까. 입사 3년 만에 대리급 승무원인 부사무장으로 진급했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다. 경직되고 권위적인 사내 문화와 탄압을 경험하고 나니 입사할 때 가졌던 회사에 대한 나름의 기대가 무너져 내렸다.

회사가 개인에게 인생의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까?

회사의 오너들이 조직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원하는 바이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가능하지, 타인이나 조직, 구조나 체계를 통해서는 결코 생성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을 시작으로,


팀장은 비행 때마다 사사건건 G에게 잔소리를 하고 행동거지를 트집 잡았다고 했다. 그렇게 감정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고객에게 미소 짓는 게 힘들다고, 마치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는데 웃는 것 같다고,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도 했다. 더구나 G는 예전에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회사 측에서 내세운 대의원 중 한 명이었던 여 승무원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조직을 팔아먹은 사람으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그 누구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뒷소문만 무성하게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저 남들처럼 잔혹한 현실에 눈과 귀를 닫고 밥벌이의 무게 앞에 자발적으로 회사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내심 G와 접촉함으로써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 것이다. 회사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후회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저래 변명하고 있지만 실상 나도 그저 비겁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이날 퍼스트클래스 좌석은 회장이 앉기로 한 자리 하나를 남겨두고 모두 찬 상태였다. 그런데 대한항공을 이용해주는 고객의 입장보다 본인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 좌석 두 자리가 비워져 있어야 한다고 말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점장에게 이미 탑승한 승객의 자리를 변경할 수도 없고 비행기에서 내리게 할 수도 없으니 다시 한번 회장에게 잘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라진 지점장은 잠시 후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사무장님, 회장님께서 자리 비우는 게 안 되면 본인이 창가에 앉겠다고, 옆 좌석 승객을 다른 자리로 옮기라네요. 이거 어쩌죠?” 점입가경이다.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한 다른 승객들도 내로라하는 회사의 회장, 사장 타이틀이 있는 사람들이니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엄연히 VIP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섣불리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건 비단 조양호 회장만의 일은 아니었다. 부사무장으로 막 승진했던 해의 봄날, 내게 KIP(회사에서는 대한항공의 영문명인 Korean Air의 앞 글자를 따서 회장 일가를 VIP가 아닌 KIP로 표현한다) 비행 지시가 내려졌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가 모교인 경기여고 동문 60여 명과 진주로 꽃놀이를 가는 비행이었다. 역시 으레 그렇게 해온 것처럼 비행 이틀 전부터 승무원 세 명이 응대 교육을 받았다. 다만 난감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 일행에게 따로 두텁떡과 오미자차를 서비스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다른 승객들도 같이 타는데 누구는 떡과 음료를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다니 승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일임에도 자신들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건 회장 일가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조 회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회사 이미지가 손상될 일을 직접 나서서 했다.


나라의 지도자나 한 단체의 리더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줄 수 있는 참모가 옆에 있어야 한다. 당장은 심기가 불편할지 몰라도 그들의 고언이 결과적으로 리더를 옳은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항공에는 위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옳다. 경영진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참모가 필요하다. 상황판단을 명확하게 해 줄 수 있는 용기있는 참모가 필요하다.

경영진에게 쓴소리를 하는 이들은,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던지, 경영진을 안타까워하던지, 회사를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회사는 어떤 일이 터지면 원인에 대한 고찰은 하지 않고 누군가를 징계할 궁리만 한다. 그러므로 서둘러 희생자를 찾아야 한다. 그들 눈에 실수한 직원은 게으르고 멍청한 사람이며 호되게 혼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수시로 채찍을 휘둘러 직원들이 나태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충실한 일꾼이 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당시 비행 편 인수인계를 담당하는 직원은 한 명뿐이었고 빡빡한 스케줄 탓에 일일이 모든 경우를 세세하게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 문제가 있으면 사람을 충원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겠지만 회사는 언제나 절대적이고도 완고한 원칙,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자를 징계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 근본적인 오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외부적 상황 가운데 직원을 지켜주지 못하는 회사를 신뢰할 수 있는 직원이 있을까?

좋을 때는 회사 덕분이고, 안 좋을때는 직원의 잘못 때문이라는 논리앞에 회사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항공사 중에서 유일하게 한 해 평가를 바탕으로 팀장급 승무원을 팀원으로 강등시킨다. 이 제도는 회사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우선 동료 직원들끼리의 상호 평가로 상급자였던 사람이 지위가 하락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관리자급 승무원들은 언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더욱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팀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언제든지 자신의 팀장이 팀원으로 강등당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서 상급자가 조직원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상황마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객실 승무원들이 더 이상 서로를 신뢰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회사는 이렇게 직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견제하게 함으로써 힘을 합쳐 회사에 저항하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경쟁은 조직의 단결력을 깨뜨린다. 대한항공 경영진은 이를 너무 잘알고 있었기에,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수를 통제하기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사회의 많은 기업들도 이 방법을 통해 많은 직원들을 속이고 있다.

자신의 밥그릇이 위태해지면, 사람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고, 자신의 미래가 달려있는 일이기에 눈한번만 딱 감으면 되는 상황들을 이겨낼 힘이 없다.

나 또한 쉽사리 다를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돈 앞에 장사 없다.


비록 회사에 실망한 지는 오래됐지만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되려고 했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내 할 일을 충실히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목 디스크로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병가를 내고 쉬기보다는 성수기의 인력 부족을 먼저 걱정했다. 인력을 감축해 본인들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조씨 일가를 탓하기보다는 나라도 나서서 일손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 원유 가격이 오르고, 회사 재정이 나빠지는 것을 걱정했다. 비행기에 몇 자리라도 비는 상황이 생기면 회사의 손실을 먼저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회사는 두 번의 실수로 나를 내팽개쳤고 그 사실이 내겐 너무 충격이었다. 적어도, 회사가 나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박창진 사무장은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했으나, 그들은 박 사무장을 모른 척 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다를게 없다.

예수가 원하는 것은 자기 공명심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삶에서 보이는 것이었다.

박창진 사무장 또한 자신의 삶을 통해 대한항공이라는 조직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못 본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 오래전, 격변의 봄을 지나면서 내 동기를 비롯한 직원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직에서 도려내는 걸 봤으면서도, 수많은 불합리한 처사를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서도 외면했을 뿐이다.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여기고 절대로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아왔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회사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쓸모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신기루는 완전히 사라졌다.

고통받는 소수를 외면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비난 받을 조건이 아니다. 다만 외면의 결과로 돌아오는 마음을 찌르는 양심의 소리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양심의 소리,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소리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에는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는 이미 회사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날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회사가 나를 버리는 카드로 방패삼아 가해자인 조 부사장을 구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 그래서 또 다른 피해자인 K 승무원에게는 회사 변호사를 붙여 발언 하나하나에도 신중했던 반면 내게는 이런 일에 대비해 변호사와 동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또한 검찰과 회사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이유로 내가 마치 죄인인 양 윽박지르고 다 내가 일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쪽으로 유도한 것이리라.


증인 심문이 끝날 무렵 재판부가 조현아 씨에게 “피해자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조현아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를 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들이 가진 재력과 권력으로 사과 같은 건 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곧 풀려날 거라고 예감했다.


한때 법조인들에 대한 나름의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법이라는 도구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 누군가의 삶의 궤도를 바꿔놓기도 하는 그들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법정에서 마주한 변호사들로 인해 내 생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둔갑시키고,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해자의 죄를 없애려는 그들의 행태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그들의 매서운 공세로 받은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정신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는 그 뒤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해지는 빌미가 되었다.


그곳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붕대를 감고 있는 이, 휠체어를 타고 온 이 등 하나같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을 위한 어떠한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그저 그 공간에 방치되다시피 앉아 있었다. 공황장애가 아직 호전되지 않았을 때라 그곳에서 사람들과 같이 앉아 있는 것도 내겐 고역이었다. 입증 과정도 험난하긴 매한가지였는데, 이미 의사에게 받은 진단과 치료 기록이 A4 용지로 100장 가까이 있는데도 증상을 현장에서 증명하라는 게 아닌가. 더구나 거기엔 정신과 의사는 한 명도 상주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병을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병원 진료 기록을 보여주고, 이미 지겹도록 반복한 얘기를 다시 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 있자니 이 나라 사회 시스템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직원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수많은 변호인의 보호를 받으며 위세 당당한 반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산재로 인정됐고, 그동안 휴가로 처리되었던 휴직 기간은 산재로 소급 적용되었다.


매번 치료를 받으러 오는 날이면 성당에 들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원망의 마음이 올라왔다. 모든 것이 미웠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그 옆의 부역자들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도,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사람들도 미웠다. 마음이 온통 미움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미워하지 마라.’ 흠칫했다. 그렇다. 내 마음속에서 싹텄던 미움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몸 전부를 점령했고, 몸의 모든 구멍을 통해 밖으로 마구 삐져나오려고 했다. 그 미움의 가시들이 나를 할퀴고 상처를 내더니 종내에는 나를 집어삼키려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은 날부터 미움을 내려놓으려 노력했다. 먼저 한 사람을, 그다음에는 한 가지 일을, 그다음에는 또 한 집단을······. 그렇게 조금씩 내려놓아 나가자니 어느 날부터인가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직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것이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비롯했는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등 굴곡진 현대사에서 비롯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기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매우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같은 맥락으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도 가해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한다.


혼란스러웠다. 회사로 돌아가면 죽을 것만 같은데, 사람들은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그때 회사는 흑색선전으로 나를 문제 있는 사람, 하자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집에서 놀고먹고 있다는 소문을 흘리고, 사고만 쳐놓고 회사 복귀도 안 할 사람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고민이 길어지는 가운데 한 신부님의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사무장님이 여기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어요.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사무장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통스러우시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사무장님에게 주신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분명 대중에게도 큰 울림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건 이후로 회사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은 변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땅콩회항 사건이 조명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갑의 폭력과 횡포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던 것처럼 대한항공 내부의 인식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복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달라진 게 없었고 나는 회사에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땅콩회항 이후 조직 내에서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내 지위가 하락한 것을 각인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들은 한결같이 내게 모욕과 망신을 주려는 듯이 행동하는가. 회사에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회사에 이렇게 충성하고 있다. 회사의 적이 된 박창진을 내가 나서서 망신을 주고 있다’고 티를 내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관리직이 되는 순간 180도 바뀌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완장을 차는 순간 스스로 ‘관리자 모드’로 돌아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회사 입장을 대변한다. 그야말로 노예의 본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료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우월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가 씌워준 감투가 실은 노예를 다루기 위한 사슬이라는 것도 모른 채 화려하게 도금됐다는 이유로 왕관이라 착각한다. 주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그 황금색 사슬이 자신들의 숨통을 조이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슬픈 현실은 이렇게 노예의 삶을 자처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거창하게 혁명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어떤 중대한 변화를 위해서는 선두에 나설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누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거나, 발을 뻗어 남들이 눈앞에 두고서도 넘지 못했던 선을 넘는 등 사소하지만 실마리가 되는 행동을 한 뒤에 봇물 터지듯이 사람들이 거기에 부합하며 상황이 급변한다. 지난해 봄,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비리가 갑자기 쏟아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가 말하길 JTBC 손석희 사장이 직접 연락을 해와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손석희 사장이 말하더군요. 제가 이번에 개설한 익명채팅방과 이 일로 부각되고 있는 조씨 일가의 갑질은 노동운동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이라고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채팅방 회원들은 이 모든 게 제 덕분에 가능했다는 신념으로 같이하고 있는 터라 차마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해보려고요!”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두려움은 쉽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모든 게 회사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회사가 가장 원하는 바라는 걸 잘 알기에 나까지 감정적으로 휘말려들 수는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안정시키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회사는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직원은 가차 없이 제거해버린다. 거기엔 그 어떤 배려나 자비도 없다. 그때부터는 ‘당신과 우리는 노동을 사고 대가를 지불한 관계일 뿐’이라며 철저하게 근로계약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직장인은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안이함을 갖기 십상이다. 나도 땅콩회항으로 회사에서 버림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L 임원 또한 회사가 자신을 이미 용도 폐기했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이상 내가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난 앞으로도 계속 싸울 생각이다. 여전히 모든 게 가해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체념한 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앞서도 말했듯 피해자의 보상 요구는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써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창한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나는 그 사건의 피해를 떠안고 4년여를 살아왔다. 약자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기권을 선언하지 않는 나를 두고 많은 이들은 “다른 꼼수가 있다”거나 “무모하고 무지해서 그러는 거다”, “아직 사회의 뜨거운 맛을 제대로 못 봐서”, “더 호되게 당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옳지 않은 일에 저항하며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조차 가진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포기하라고 강요받는다. 서글픈 사실은 이러한 강요를 소위 말하는 갑이 아니라 나와 같은 다수의 을이 한다는 점이다. 나와 같다고 믿었던 다수의 을이 어느덧 나를 반사회적 인물로 낙인찍고 자기 욕심에 눈이 먼 사람으로 매도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의 각성은 이토록 무서운 대가를 요구한다.


왜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고 있는가. 어쩌면 나도 안드로이드였을지 모른다. 의도치 않았지만 관습화된 복종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비로소 온전한 주체이자 개인이 된 것만 같다. 그렇기에 나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비록 나의 몸부림이 온전한 패배로 귀결될지라도 나로 인해 용기와 자유의 씨앗이 발현되고 사회를 바꿀 자그마한 계기라도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지지 않을 용기다.


한때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셔츠를 입고,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면서 큰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다. 타인이 인정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내가 이 항공사의 대표 승무원이라는 마음으로 정성과 노력을 쏟았고, 진정한 서비스맨이 되기 위해 청춘과 열정을 모두 바쳤다. 누구보다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자존감을 함께 느꼈다. 그러나 2014년 12월,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날 뉴욕 JFK공항에서 나는 그녀에게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감까지 짓밟혔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 밖으로 쫓겨나는 순간까지도 가해자에게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자신의 권리와 인격이 처참하게 짓밟히던 그 순간조차 노예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