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번째책] 흙 이광수

흙-이광수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주인공 허숭을 통해 자기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했던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잘못된 길에 접어들던 이들이 마음을 되돌리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눈앞에 그려지듯 기억남는 장면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한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내 정선의 외도를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채 하고 사과를 기다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주인공 허숭이 아내 정선의 잘못을 지적하며 이혼을 준비하는 모습.

  • 아내를 사랑하려고 허물까지 덮어주려 속마음이 곪아 가는 허숭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울분을 토해내는 부분은 정말 통쾌하였다.

4) 어떤 점을 배웠는가?

  • 사실 농촌사업 한다는 허숭을 지켜보는 나도, 참으로 미련하다. 사람들이 저리한다고 바뀌지 않을텐데, 혀를 차곤 했다. 결국은 망하겠지, 희망적으로 보이더라도 어려움의 순간이 온다면 포기하겠지 판단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허숭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괄시와 비방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농촌마을을 살려보겠다는 진심어린 마음이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진심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변한다는 이야기 이지만, 음.. 아직까지의 경험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5) 저자에게 한가지 꼭 묻고싶은게 있다면?

  • 진심은 통한다는 , 언젠가는 사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믿음이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먹어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묻고싶다.

책속의 한구절

“갑오경장 이후에야 글이나 양반이 다 쓸데 있나.” 하여 이 두 동네도 점점 쇠퇴하여서, 용감한 사람들은 모두 관을 벗어버리고 수건을 동이고, 책과 붓대를 집어 던지고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갔다. 그러나 그중에는 여전히 옛 영화를 생각하여 관을 쓰고 꿇어앉은 이도 한둘은 있고, 또 숭의 아버지 모양으로 ‘개화에 나서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다니다가 옥살이를 하는 이도 이삼 인은 있었다. 이를테면 유순의 집은 약아서 제 실속을 하는 패의 대표요, 허숭의 집은 세상일을 합네, 학교를 다닙네 하고 날뛰는 패의 대표였다.


나무들을 다 찍어내고 나무뿌리를 파내고, 살여울 물을 대느라고 보를 만들고, 그리고 그야말로 피와 땀을 섞어서 갈아놓은 것이다.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먹고 숭의 조상과 순의 조상이 대대로 살고 즐기던 것이다. 순과 숭의 뼈나 살이나 피나 다 이 흙에서, 조상의 피땀을 섞은 이 흙에서 움 돋고 자라고 피어난 꽃이 아니냐. 그러나 이 논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숭이나 순의 집 것이 아니다. 무슨 회사, 무슨 은행, 무슨 조합, 무슨 농장으로 다 들어가고 말았다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파기가 싫어서 아니꼽게 놀고먹어 보겠다고 시골 남녀 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조 대대로 피땀 흘려 갈아오던 논과 밭과 산—그 속에서는 땀만 뿌리면 밥과 옷과 채소와 모든 생명의 필수품이 다 나오는 것이다—을, 혹은 고리대금에 저당을 잡히고, 혹은 팔고 해서까지 서울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나, 자녀를 보내는 부모나, 그 유일한 동기는 땅을 파지 아니하고 놀고먹자는 것이다.


갑진에게 있어서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인 그에게 있어서는 혼인이란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자야 어디는 없느냐. 카페에 가도 수두룩하고 여학생을 후려내더라도 미처 주체를 못할 형편이다. 오직 돈 있는 아내—그것이 갑진에게는 가장 귀하고 또 필요품이었다.


자네 같은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까지 그런 생각을 가져서 쓰겠나. 자네와 나와 같이 친한 경우에야 무슨 말을 하기로 허물이 있겠나마는 시골 놈, 상놈 하고 입버릇이 되어 말하면 민족 통일상 불미한 영향을 준단 말야. 자네나 내나, 더구나 자네와 같이 귀족의 혈통을 받은 사람이 나서서 양반이니 상놈이니, 서울 놈이니 시골 놈이니 하는 걸 단연히 깨뜨리고 오직 조선 사람이라는 한 이름 밑에 서로 사랑하도록 힘써야 될 것 아닌가.”


‘나도 한 가지 조선을 위해서 무슨 큰일을 해야겠다. 그리하자면 이 씨나 윤 씨와 같은, 또는 한 선생과 같은 극기, 헌신, 분투의 생활을 해야겠다.’ 하는 심히 단순한, 그러나 심히 감격 깊은 생각을 하였다. ‘옳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고 허숭은 생각하였다. ‘농민 속으로 가자.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몸만 가지고 가자. 가서 가장 가난한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입는 것을 입고, 그리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사는 집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한 농민의 심부름을 하여주자. 편지도 대신 써주고, 주재소, 면소에도 대신 다녀주고 그러면서 글도 가르치고 소비조합도 만들어주고, 뒷간, 부엌 소제도 하여주고, 이렇게 내 일생을 바치자.’


조선 치자治者 계급은 예로부터—그 예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말할 것 없지만—지엽을 숭상하고 근간을 잊어버렸단 말일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고래로 조선의 치자 계급이던 양반 계급이 말야, 그 양반 계급이 오직 자기네 계급의 존재만을 알았거든. 자기네 계급—그것이야 전 민족의 한 퍼센트가 될락 말락 한 소수면서도—자기네 계급이 잘살기에만 몰두하였거든. 그게야 어느 나라 특권 계급이나 다 그러했겠지마는, 조선의 양반 계급이 가장 심하였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는 국가의 수입을 민중의 교육이라든지, 산업의 발달이라든지 하는 전 국가적 민족적 백년대계에는 쓰지 아니하고, 순전히 양반 계급의 생활비요 향락비인—이를테면 요샛말로 인건비에만 썼더란 말일세


어느 서양 사람이 조선을 시찰하고 비평한 말을 어디서 보았네마는, 그 사람의 말이 나무 없는 산, 물 마른 하천, 좋지 못한 도로, 양의 우리 같은 백성들의 집, 어리석고 쇠약한 사람들, 조선에서 눈에 띄는 것이 모두 다 맬러드미니스트레이션maladministration27의 자취라고. 이 사람의 말에 자네 반대할 용기가 있나. 조선의 모든 쇠퇴가 정치를 잘못한 자취라는 말을? 그것이 다 양반 계급의 계급적 이기욕과 가치 판단의 전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까 시골 놈들은 무지하단 말야. 안 그런가.” 하고 발을 탕탕 구르며, 성냥을 뻑 그어서 담배를 피워 문다. “자식을 팔아먹는 아비의 맘은 어떠하겠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나를 생각해 보게.” 숭은 추연해진다. 숭의 눈앞에 눈에 익은 농촌의 참담한 모양이 나뜬다.


하고 숭은 또 양심의 한편 구석에서 소리를 침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의 머리는, 양심(?)은 마치 지금까지 가리어졌던 모든 운무가 걷힌 것같이 쾌도로 난마를 끊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농촌 사업은 정선이하고 하지. 정선이야말로 훌륭한 동지요, 동료가 될 수 있는 짝이 아닌가. 아아,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고 숭은 한번 한숨을 내어쉬었다. 가슴에 막힌 것이 다 뚫린 듯이 시원하였다. 그리고 자기 전도가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같이 보였다. 그의 양심, 의리감, 진리감, 이러한 것들은 그 분홍 안개 속에 낯을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정선은 이 집이 친정집만 못한 것이 불평이었다. 더구나 양실이 없는 것과 넓은 정원이 없는 것이 불평이었다. “이 집이 협착해서 어떻게 살어!” 하고 정선은 가끔가다가 짜증을 내었다. 그럴 때에는 숭은 놀랐다. 사십 간 집, 이렇게 좋은 집이 협착하다는 정선을 어떻게 섬겨가나 한 것이었다. “가만있으우, 내 변호사 노릇 해서 돈 벌어서 저 석조전만 한 집을 하나 지어드리리다.” 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끝에는 숭은 스스로 놀랐다. ‘어느새에 나는 내 집만을 크게 꾸미려는 생각이 났는가, 이것이 과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요, 조선 전체를 생각함인가’고.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허숭, 윤정선, 이건영, 한민교, 김갑진, 심순례, 유순, 정서분, 이러한 인물들은 내가 보기에 조선의 현대를 그리는 데 필요한 타입의 인물로 본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인물로 하여금, 비록 처음에는 서로 미워하는 적도 되고 또는 인생관과 민족관의 인식 부족으로 생활에 많은 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목자 잃은 양, 지남철 없는 배와 같은 오늘날의 조선 청년계의 혼돈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의 탓이요, 그들 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한 목표, 한 이상, 한 주의를 위하여 한 팔이 되고 한 다리가 되어 마침내는 한 유기적 큰 조직체의 힘 있는 조성 분자가 될 사람들이요, 또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사람들이 되게 하고 싶다.


“저러니까 일생에 입에 밥이 아니 들어가지. 모를 내면 모를 낼 게지 왜들 우두머니 서서 기차 지나가는 것을 보아. 그따위로 내 눈을 속이다가는 내일부터는 일을 아니 줄걸. 내가 일을 아니 주면 흙이나 집어 먹고 살 텐가. 흙은 누가 주나. 산은 국유지요, 논밭은 임자가 있는걸. 괘니시리 그따위로 하다가는 다들 밥 굶어 죽을걸. 게들 사는 집터도 내 땅야. 굶어 죽더라도 내 땅에서는 못 죽을걸. 허, 고얀 사람들 같으니. 아 그래 하루 종일 낸 것이 겨우 요거야. 저런 여편네, 계집애 년들은 일도 못하고 방해만 하거든. 젊은 녀석들이 계집애들 사타구니만 들여다보느라고 어디 일을 하겠나. 내일부터는 계집애와 여편네는 다 몰아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따로따로 일을 시켜야겠군. 여보게 문보, 자네는 무얼 하느라고 이것들이 핀둥핀둥 놀고 있어도 말 한마디도 아니 하나? 내가 돈이 많아서 자네를 삯전 세 갑절이나 주는 줄 아나. 허, 고얀 손 다 보겠고.” 신 참사의 말은 갈수록 더 사람들의 분노감을 일으킨다. 제 것 남의 것을 잊고, 다만 흙을 사랑하고, 볏모를 사랑하는 단군 할아버지 적부터의 정신으로 버릇으로 일하던 이 농부들은, 아아 우리는 종이로구나 하는 불쾌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찌하다가 우리는 땅을 잃고 집을 잃고 낙도 잃었을까.” 이렇게 늙은 농부는 유시호 자기네가 가난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이 문제를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다.


그에게는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설명할 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할 힘도 없다. 그는 모를 내고 김을 매고 거두고 빚에 졸리고, 모기, 빈대에게 뜯기고, 근심 많은 일생을 보내기에 정력을 다 소모해 버리고,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여력이 없다. 마치 늙은 부모가 오직 젊은 자녀들을 믿는 모양으로, 그는 어디서 누가 잘살게 해주려니 하고 희미하게 믿고 있다. 그에게는 원망이 없다. 그것은 조선 맘이다.


“어머니 잡술 것 없소?” 하고 물으면, 그는, “없긴 왜? 부엌에 담아놓았지. 지금 먹기가 싫여서 이따가 먹으랴고 그런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모양으로 한갑 어머니는 춘궁이 되어서부터는 햇곡식이 날 때까지 하루 한 끼도 먹고 반 끼도 먹고 살아간다. 밖에 나가서 힘드는 일을 하는 아들만 든든히 먹여놓으면 집에 가만히 있는 자기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이 늙은 부인은 피부 밑에 있어야 할 기름을 다 소모해 버리고, 아마 내장과 뼛속에 있는 기름도 다 소모해 버리고 오직 뼈와 껍질만이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은 흐리고 입술은 검푸르렀다. 피가 부족한 것이다. 피 될 것이 없는 것이다—이렇게 허숭은 생각했다.


이 박사는 조선에서 월급 생활로는 도저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독신인 것을 밑천으로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 덕으로 거드럭거려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심순례를 사랑한 것은 그건 상인의 딸이라는 것이요, 그 차버린 것은 순례의 집에 재산이 없음을 안 까닭이었다. 미인이요, 부자인 여자—이것이야말로 이건영 박사의 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양반, 중인, 상놈을 금을 그어가지고는 벼슬은 양반만 해먹고, 중인은 역학이나, 의학이나, 수학 같은 기술 방면에밖에 못 나가고, 나머지 상놈 계급은 자자손손이 아전 노릇이 아니면 농, 상, 공업밖에 못 해먹고—농, 상, 공업이 천한 것이 아니겠지마는 조선 양반들은 그것을 천한 것으로 작정을 해놓았거든. 그러고는 나랏일은 양반들만 맡아두고 했는데, 그 나랏일이란 무엇인고 하니 나랏일이 아니라 기실은 자기네 집안이 잘살 길, 요샛말로 하면 제 지위와 재산을 마련하는 데 이용을 해먹었단 말이오.


자기는 계집애들의 입술을 따라서 이 꼴을 하고 돌아다닐 때에 허숭이가 ‘돈 있는 어여쁜 아내’도 다 내던지고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히로익한 것이 더욱 숭고해 보이는 대신에 자기의 생활이 너무도 무가치함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순이가 말하는 숭의 일상생활을 듣고 보면 과연 숭은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제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다시 말하면 밥도 안 나오고 옷도 안 나오는 일에 공연히 숭은 분주한 것이었다. 서비스—세상을 위하는 일, 이런 것을 정선도 관념적으로는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것은 오직 수신 교과서에나 예배당 강도대에서나 들을 소리요, 몸소 행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바로 자기의 남편이 그러한 일을 실지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선은 놀랐다.


앞으로 한 선생의 생활을 보장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집과 세간과 있는 것을 다 팔면 이태 동안을 굶어 죽지 아니하고 살아갈는지 모른다. 한 선생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 이 년간 청년 중에서 동지를 구하고, 청년을 조직하고 훈련하는 일의 준비를 하다가 더 먹을 것이 없이 되는 날, 그는 행랑살이나 하인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도 할 여유가 없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참된 젊은이를 만나서 조선의 이상을 말하고, 조선 사람이 앞으로 해나갈 일의 계획을 말하고, 청년의 사명을 말하고, 조선의 희망과 자신을 말하고, 이리하여 한 사람 한 사람 조선의 힘 있고 미쁜 아들을 구하는 것으로 일을 삼고 의무를 삼고 낙을 삼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조선에 대한 은혜 갚음의 오직 한길이요, 또 조선을 건짐의 오직 한길이요, 자기의 일생을 값있게 하는 것의 오직 한길이었다. 아니 지금에는 이 일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그만 천성을 일러버린 것이었다.


조선이 오늘날에 가장 크게 요구하는 것이 이 심 안 맞는 노릇이 아닌가. 심 안 맞는 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할 터인데 적어서 걱정이다. 모두들 이해관계가 분명하고 너무들 똑똑해서 저 한 몸에 이로움이 없는 일을 매달고 쳐도 아니 하려 드는 이때다.


갑진이나 정선에게는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를 기뻐하는 일본 사람의 심리를 깨달을 수가 없다. 그들은 도리어 일본 군인이 어리석어서 전장에 나아가 죽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들의 유전적인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주의로 굳어진 뇌세포는 이와 다르게 생각할 자유를 잃어버렸다. 그들로 하여금 연설을 하게 한다면, 글을 쓰게 한다면 그들의 여러 대 동안 단련된 구변과 문리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좋은 이론을 전개하게 하고, 그들의 비평안은 능히 아무러한 일, 아무러한 사람에게서도 흠점을 집어낼 만하게 날카롭다. 그러나 이기욕 중독, 향락 중독, 알코올 중독된 도덕적 의지는 말할 수 없이 약하다.


개인의 새로운 결심과 감격은 그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가 있을는지 모른다. 만일 노쇠한 민족이 다시 젊어질 수 없다는 어떤 학자의 말이 옳다고 하면 노쇠한 계급, 노쇠한 혈통의 후예도 영영 다시 젊어질 수 없을는지 모른다.


갑진은 제가 숭보다 지혜 있고 힘 있는 사람이라던 생각이 깨어지는 것을 눈앞에 보았다. 저는 숭이에게 비겨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속으로는 견딜 수 없는 분함과 슬픔을 품으면서도 남성적인 의지력으로 그것을 꾹 눌러두었음일까. 마치 단단하고 두터운 땅거죽이 땅속의 지극히 뜨거운 불을 꾹 눌러 싸고 있는 모양으로, 숭의 강한 인격의 힘이 질투와 분노의 몇천 도인지 알 수 없는 불을 가슴속에 눌러 품고 있음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숭이란 사람이 천지에 꽉 차도록 무섭고 큰사람같이 보였다.


“인제는 여자도 우는 것을 버릴 때가 아닌가. 우는 것은 약자의 무기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것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거든, 찬 이지란 말이다. 맘을 식혀, 싸늘하게 얼음같이 식혀요. 그래야 바른 생각이 나오거든. 원래 네가 맘을 식혔다면야 이런 일이 나지를 아니했을 것이다.


저를 평가할수록 아무러한 일에도 도무지 업셋(쩔쩔매는 것)하지 아니하는 남편의 지력과 의지력이 가치가 높고 무서운 것같이 보였다. 현 의사는 싸늘한 지혜의 사람만 되지마는, 남편에게는 싸늘한 지혜 외에도 굳은 의지의 힘과 불같은 열정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자살이란 것은 무엇을 해결하는 수단 중에 제일 졸렬한 수단이다.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는고 하니 책임감은 있으나 도무지 힘이 없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백 가지 천 가지로 있는 힘을 다해보다가 그야말로 진퇴유곡이 되어서 한번 죽음으로써 이름이나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


저마다 못할 일이지마는 제 맘이 좀 괴롭다고, 세상이 좀 부끄럽다고 죽어? 그건 약하다는 것보다도 죄악이란 말이다. 무슨 죄악이나 죄악은 필경 약한 데서 나오는 것이지마는, 가령 정선이로 보더라도 말이다


살여울 네 겨리 중에 숭이가 든 겨리의 종자놓이는 돌모룻집 영감님이라는 쉰댓 된 노인이다. 그는 일생에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하는 덕에 논마지기 밭날갈이도 장만하고 짚으로나마 깨끗하게 집도 거두고 동네 사람들의 대접도 받는 노인이다. 그는 말이 없다. 벙어리와 같이 말이 없다. 그리고 쥐와 같이 부지런하다. 집에 가보면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다. 그의 감화로 그 집 아들딸, 며느리가 다 그렇게 말이 없고 부지런하다. 조용하게 일만 하는 집이다.


‘순을 죽이는 것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숭의 가슴을 찔렀다. ‘그렇다, 내다. 그렇게 나를 따르는 순을 내가 아내를 삼았다면 이러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왜 나는 순을 버리고 정선과 혼인을 하였던가. 순에 대한 사랑과 의리만 지켰다면 정선의 다리가 끊어지는 비극도 아니 일어났을 것이 아니었던가. 이 모든 비극은 다 나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에 숭은 모골이 송연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뉘가 할 말이야?” 하고 정근은 되살았다. 그의 동그란 눈에는 독기를 품었다. “비극을 만들기는 누가 만들고, 사람을 죽이기는 뉘가 죽였는데, 대관절 이 평화롭던 살여울의 평화를 교란해 놓기는 뉘가 하였는데?” 하고 정근은 도리어 숭에게 대들었다. “그건 무슨 말인가.” 하고 숭은 정근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생각해 보게그려. 자네가 나보다 더 낫게 알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비극의 작자인 자네가 그것을 모르고 되레 날더러 물어?”


“그럼 서울로 가요. 아무리 애를 써도 일도 안 되고 동네 사람들이 고마운 줄도 모르는 걸 무엇하러 여기서 고생을 하우? 서울로 갑시다. 가서 다른 일에 그만큼 애를 쓰면 무슨 일은 성공 못하겠수?”


“젊은이들 중에도 정근이 놈의 술잔이나 얻어먹고 못되게 구는 놈도 있지마는 그게 몇 놈 되나요. 적으나 철이 있는 사람이야 다 허 선생이 떠나신다면 동네가 안 될 줄 알지요. 요새에—그것도 정근이 놈의 수단이겠지—유 산장 영감이 생일날일세, 제삿날일세 하고 동네 늙은이들을 청해서는 개를 잡아 먹이고, 술을 먹이고 그러지요. 못난 늙은이들이 거기 모두 솔깃해서 그러지마는 그거 몇 날 가요? 어디 그 욕심쟁이 고림보 영감이 전에야 동네 사람 술 한잔 먹였나. 남의 동네 사람들을 청해 먹일지언정 없지, 없어요. 그러던 것이 요새에 와서는 아주 인심 사보려고, 흥, 그러면 되나요?”


“너는 본래 건방진 놈이다. 계집을 둘씩 셋씩 끌고 댕기며 아니꼽게 인민을 위해 일을 한다고, 네 일이나 해!”


정선은 방을 치우기와 빨래하기도 배웠다. 소를 강변으로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기기도 하고, 썩 좋은 꼴판을 발견할 때에는 이튿날 낫을 들고 나와서 꼴을 베기도 하였다. 정선의 분결 같은 손은 피부가 점점 굳어지고 정선의 흰 낯은 꺼멓게 볕에 그을었다. 그 모양으로 정선의 정신도 굳어지고 기운차게 되었다. 노동과 피곤은 정선의 입맛을 돋우어서 오래 두고 먹던 소화약의 필요를 없이하였다. 그리고 베개에 머리를 붙이기만 하면 잠이 들었다. 정선은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제 맘대로 아무에게도 의지함이 없이 사는 인생이요, 노동과 피곤에서 오는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인생이었다.


“협동조합은 못하리라고 경찰에서 금해서 출자했던 것을 모두 노나 가졌지요. 주재소에서 와서 입회를 하고 모두 노났답니다. 그리고 유치원도 문을 닫고. 유치원은 나 혼자라도 하려면 하겠는데, 동네 사람들의 인심이 변해서—그래도 근래에는 동네 부인들이 우리 집에 놀러도 오고 의논하러도 와요. 다들 못살게 된다고, 술들만 먹고, 빚들만 지고—하고 예전 생각이 나나 보아요.” 숭은 가만히 살여울을 생각하고 살여울의 앞날과 조선 농촌의 앞날을 생각하였다.


숭이가 경영하던 협동조합이 농량과 병 치료비와 농구 사는 값밖에는 일체로 대부하지 아니하던 것을 야속히 여기던 살여울 농민들은 잔치 비용이거나 노름 밑천이거나를 물론하고 저당만 하면 꾸어주는 유정근의 식산조합을 환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여운 농민들은 그것이 자기네의 자살행위인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도장만 찍으면 돈이 생긴다.’ 고 살여울 농민들이 생각하게 된 지 이태가 다 못하여 인제는 농량조차도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추수할 곡식을 저당으로 한 장릿벼만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정근은 작은갑의 태도에 놀랐다. 첫째로 작은갑이가 칼을 들고 저를 죽이러 온 것은 아내에 대한 분풀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아내와 정근과의 간통을 이유로 돈이나 달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대해서 정근은 논이나 여남은 마지기 주기로 결심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작은갑은 이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비치지 아니하였다. 그의 요구는 자초지종으로 순전히 동네를 위한 것이었다. 살여울 동네를 위한 것이었다. 정근에게는 이런 일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의외의 일이었다. 자기 같으면 이런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돈 몇천 원 떼어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