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번째책]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오라 겐

가자어디에도없었던방법으로-테오라겐

오문오답

1)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서,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 한 젊은이의 끝나지 않은 발자취.

2)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에 대한 질문이 멈추는 순간 소망이 끊어진다.

3)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 17살의 어린 청년이, 교육제도의 틀을 벗어나 혼자서 유럽으로 떠나는 장면,

  • 내가 17살, 고등학교 1학년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선택만하면 모든것이 가능한 환경에서, 가정을 떠나, 나라를 떠나 홀로 여행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 학교의 답답함을 벗어나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다닐때, 저자의 아버지가 그를 다그친다. 인생의 계획이 없이 삶을 낭비하며 살겠나며, 내가 저자의 아버지였어도 똑같은 말을 했을것 같다.

  •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아버지에게 충고나 훈계를 들어본 적이없다. 물론 꾸지람도 들어본 적이 없다. 되돌아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아버지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았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것 같다. 자신의 자녀를 100% 신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4) 어떤 점을 배웠는가?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은 한 사람을 단순히 경제적 성공으로 이끄는 단순한 매커니즘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는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이다.

  • 단순 명료하고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다. 다만 자기 확신이 들때까지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조그마한 기회들을 열어주곤 하는 것 같다.

5) 저자에게 한가지 꼭 묻고싶은게 있다면?

  • 경영자로서 두렵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다면?, 만약 가수로서 성공한 삶과 현재의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책속의 한구절

예전에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서가 아니다. 인생을 깊이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다.


나에게는 나의 가능성을 온전히 믿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그것이 나의 특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삶이란 놀라움의 연속이고, 당연한 소리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편리함과 즐거움이 병행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편리해진다고 즐거워진다는 보장은 없다. 불편함이 따분함으로 직결되지도 않지만. 기술의 발전과 풍요로움, 이런 것들이 최선을 다해 ‘지금’을 즐기는 생물들에게 그리 큰 의미가 되지는 못한다.


평소에는 부모님의 사이가 무척 돈독했다.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들인 나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늘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자갈길을 함께 걸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했다. 문제는 이성이나 양심이 연속되는 악운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과 양심을 지켜내려면 눈곱만큼이라도 ‘여유’라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에게는 강한 의지가, 남겨진 사람에게는 상당한 이해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여행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었다.


아버지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힘을 다해 매일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늘 되물었을 것이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하는 그 감각 말이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전념할 때 뿜어내는 기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진심은 많은 것을 움직이게 한다. 어떤 꿈을 꾸든,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건 자유다. 경험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무지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게 있다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모르는 게 어때서? 뭐가 나쁜데? 부끄러워할 것 없다. 나는 단지 이게 하고 싶을 뿐이다!’


불안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진심으로 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류가사키에서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슬픈데 세상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나 괴로움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슬프고 괴롭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위해 슬퍼할 이유는 없다. 우리 가족이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세상이 암흑으로 변하는 일도 없었다. 우리의 슬픔이 이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언젠가 끝이 난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수년 뒤의 멋진 날을 그리거나 장래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인생의 축제날이다. 다시 말해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아버지는 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거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하라며 언성을 높였다. 열일곱 살 소년에게 삶의 목표와 보람을 찾아 거기에 몰두하며 살아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심으로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삶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 나에게 화를 냈고, 학교를 뭐 하러 다니냐고 소리쳤다.


슬슬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들 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정해야 한다고, 늦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미래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오 년, 십 년 동안 준비해야 하는 직업이란 게 정말 있을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결정해버리면 그걸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많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음이 불편한 적도 없다. 이 여행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던 게 아닐까? 어떤 장소나 집단에 정착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렸던 건지도 모른다. 변화가 많고 불안정해도 여행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오히려 소속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불안정한 것이 아닌가? 몸뚱이 하나와 발을 딛고 서 있을 지면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막 돋아난 풀에서는 싱그러운 향기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질척하고 비릿한 흙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윤기와 탄력이 있다.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팔을 뻗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노력은 머지않아 물거품이 될 것이다. 뛰어나가는 속도가 빠르고 그 기세가 거셀수록 크게 실패하고 만다. 재밌는 건 그 실패가 클수록 좋은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나의 두 아이들도 곧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나는 아들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이 부끄럽고 한심해도 좋으니 결코 도중에 그만두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천재에게 노력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노력은 평범한 사람이나 하는 거니까, 나는 가만히 있어도 성공할 놈이다, 내가 부러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전하고 싶으냐고. 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일단 한 대 때릴 것이다. 때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다. 네 생각이 틀렸다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한다고 깨우칠 수 있도록 말이다.


좋은 방법은 실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실패는 그것의 파급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해서 무서운 거다. 굉장한 실패를 경험하고 나면 대충이나마 그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대부분의 실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끔찍하지 않다. 오히려 실패에 익숙해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긴장도 덜하게 된다.


예술가라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절대 속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로지 예술가 본인의 성장을 통해서만 번복이 가능하다. 간단히 바꿔버린다면 애초에 예술가로서 존재하는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그때 나는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예술가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밀어붙이고, 그것을 끝까지 표현할 힘이 있어야 했다.


인생 최대의 실패를 겪고 나서 자신감을 몽땅 잃어버린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록 스타가 되기로 결심하고 육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번 일로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가까스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이대로 다시 시작하기에는 자신감과 자긍심에 생긴 상처가 몹시 깊었다. 다시 한 번 그것들을 되살려야 했다.


실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 방법은 잘못됐다든지, 이 방법이 더 좋았다든지. 그러나 실패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실패하면 부끄럽고, 상처받고, 후회한다. 그 단계를 거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하는 마음과 만날 수 있다. 그 마음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자질구레한 기분에 휩쓸려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기어이 알아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음악 스타일이 바뀌면서 공연도 예전보다 격렬해졌다. 체력의 한계에 부닥쳤고, 나는 생활 패턴을 대대적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생계를 위해 파칭코 아르바이트는 그만둘 수 없었다. 다만 외식을 줄이고, 점심은 기름을 모두 떼어낸 돼지 등심을 구워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집에서 먹는 건 크래커뿐이고, 하루에 10킬로미터씩 걸어다니며 체력을 키웠다. 처음에는 갑자기 바뀐 생활 패턴이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불평할 겨를은 없었다.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한 달 사이에 체중이 10킬로그램이나 줄었다.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동안 음악 세계에 몰두해 있던 나는 디자인이라는 세계에서도 많은 사람이 어제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표현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 또한 ‘크리에이티브creative’, 창조적인 활동이다.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인생에는 아무리 원해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이 있다. 사실은 조금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아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십 대가 끝날 무렵, 겨우 깨달았다.


서른 살까지 앞으로 이 년,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내 상황이 절망적인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꿈을 좇는 걸 그만두고 제대로 된 일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당시의 나는 크게 상심했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아니다,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았다.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성공도 실패도,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실패는 사람이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일반 기업은 소비자나 시장, 경쟁 상대를 조사하고 사업 내용을 구상한다. 그러나 애플, 버진 그룹, 파타고니아는 이루고자 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거리로 나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질문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롤플레잉을 하는 기분이었다.


애가 탔다. 매 순간 위기가 찾아왔고,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관용과 배려를 잃어가고 있었다. 정말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성인군자가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한다. 말로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정말일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그 어떤 사심도 없이 살았던 료칸과 달리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출세하고 싶고, 아늑한 집에서 살고 싶고,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어한다. 나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사람들의 인정까지 바랐다. 그러니 늘 초조할 수밖에.


‘발뮤다 디자인의 제품은 왜 불티나듯 팔리지 않을까?’ 나는 지겹도록 그 생각만 했고, 단순히 제품이 비싸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드디어 알아냈다. 사람들이 발뮤다 디자인의 제품을 사지 않는 건 비싸서가 아니었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펐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만든 제품이, 회사가,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였다니. 만일 내가 만든 제품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거였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또다시 내 멋대로 살고 있었던 거다. 멋있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먼저였다. 왜 그걸 몰랐을까?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회사는 파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나는 빈털터리였다. 그런 나에게 중국으로 가는 항공권과 숙박비와 식비, 그리고 적게 잡아도 수백만 엔은 들어갈 최종 샘플 제작비를 마루야마 사장이 개인적으로 부담해줬다. 언제 돌려드리면 되겠냐고 송구해하는 나에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테라오 군, 회사가 망하면 어차피 돌려주지도 못해. 돌려줄 때는 테라오 군이 부자가 됐을 때야. 그깟 돈, 언제든지 괜찮아.”


당시 만났던 몇 사람은 필사적으로 다시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마루야마 사장은 물론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제품을 미리 주문해준 거래처,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지인과 신제품 발표회를 열어준 사람.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이 일에 끌어들이고 말았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기대에 답해야 했다.


그린팬의 입고를 한 달 앞두고 판매처에서 발주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좀처럼 울리지 않아 고장이 난 줄 알았던 팩스가 끊임없이 울렸다. 매주 컨테이너로 실어오는 수백 대의 선풍기를 각 판매처에 나눠 보내고, 부족한 수량은 다음 컨테이너로 확보했다. 판매처에 따라 요구사항은 제각기 달랐다. 일정이 변경되거나 겨우 맞춰둔 출하 일정표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한 적도 많았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언제나, 누구나, 그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건 틀린 생각이다. 아무리 내게 불리한 상황이라 해도 역전할 기회는 늘 있다. 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할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 전부를 걸었을 때에야 비로소 역전할 수 있었다.


도중에 귀찮아져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이렇게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즐거웠던 모양이다.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기억은 기억을 부른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떠올리지 못했을 장면도 많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원색의 장면들이 따뜻했고, 슬펐고, 반갑고, 그리웠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내가 그들의 아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꼈다. 막무가내였고, 지나치게 정열적이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한 기업의 CEO라는 점에서 보면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는 일과 회사에 관한 것뿐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은 말이 있었다. “땅이 있고, 그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몸뚱이 하나만 있으면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인생은 짧다고,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이 몇 번이고 말하던 그의 표정을 나는 한동안 잊지 못했다. 열의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해 보였다. 하기야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그래서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밝아도 이상하겠지만


그런가 하면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예민하고 로맨틱하다. 글에서뿐 아니라 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시적인 표현이 무수히 쏟아진다. 저 멀리 따뜻한 섬에서 목격했던 찬란한 노을빛, 어둑한 골목길에서 울면서 먹었던 고소한 빵 냄새, 난생처음 거래처와 미팅을 끝내고 땀에 흠뻑 젖었는데 때마침 불어온 차가운 바람의 감촉. 그는 어떠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당시에 온몸으로 느낀 감각과 향기, 맛이나 온도로 그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런 그가 제안하는 제품에 언제나 ‘혁신’ 혹은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핵심에는 이런 예민한 감각과 주변의 시선을 태워버릴 만큼의 뜨거운 열정이 있는 게 아닐까?